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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과의 변신은 무죄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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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10.04 10:3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지역대학들이 입학생 감소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사회의 흐름에 신음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2021학년도 수능 응시원서 접수자는 49만3433명이다. 작년보다 5만5301명 감소했다. 수능이 도입된 1994년 이후 40만명대로 떨어졌다. 수능에서 5:1 이하 학과는 미달이 된다고 봐야 한다.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번 수시 경쟁률을 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이공계 학과 경쟁률이 기대치 만큼 높지 않다. 저성장시대에는 실용학문이 부상한다는데 왜 그럴까? 사회의 수요와 학생의 공급 간 불균형 때문이다. 수학 영역 지원자 중 ‘가형’은 15만5천720명으로 전체의 33.0%, ‘나형’은 31만6천39명으로 67.0%가 선택했다. 가형은 이과 학생들이, 나형은 문과 학생들이 주로 지원한다. 문과생이 이과생보다 두 배가 많다. 문과생이 이과 학과를 선택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눈이 녹으면”하고 물어보면 문과생은 “봄이 온다”라고 답하는데, 이과생은 “물”이라고 답한다. “LiFe”가 뭐냐고 물어보면, 문과생은 “삶”, 이과생은 “철화 리튬”이라고 답한다. “probability” 단어에 대해 문과생은 “가능성”, 이과생은 “확률”이라고 응답한다. 대학 수업에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에게 AI, 빅데이터가 중요하니 과목을 선택하라고 하면 필요성은 알면서도 선택을 주저한다. 상위권 대학에서는 큰 문제는 없겠지만 중위권 지역대학의 경우 당분간 전통적인 이공계(특히 기초학문 계열) 학과의 인기는 살아나기 쉽지 않을 거같다.

둘째, 과감하게 변신한 학과의 경쟁률이 대학의 기대와 달리 높지 않다. 대학측에서는 AI학과, AI 무슨무슨학과, 핀테크학과, 빅데이터학과 등과 같이 4차산업혁명 관련 학과를 돈 들여 만들었는데 “왜 시장에서 반응을 안 하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생각에 비해 너무 빨리 나아간 것이다. 세상이 나아갈 방향이란 걸 알지만 ‘내가’, ‘내 자식’의 실력을 알기에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주저하게 된다. 중위권 대학에서는 신기술을 받아들이되 학과의 명칭은 반 발짝만 앞서가는 게 좋다.

셋째, “메디컬”, “바이오”, “융합” 등과 같이 모호한 용어를 앞뒤에 붙인 학과들의 경쟁률도 그리 높지 않다. 바이오의약학과, 응용화학과, AI융합학과, 바이오헬스융합학과, 바이오메디컬공학 같은 학과명은 언뜻 보기에 멋진데 왜 시장에서 반응을 안 하지?? 4차산업혁명에 ‘바이오’도 한 축에 들어가고, 특히 주식시장에서는 ‘바이오’, ‘00제약’ 명만 붙으면 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의약학” 멋진데, 왜 이러지? 학생과 학부모가 자기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는 의사, 연예인, 축구선수, 판·검사, 국회의원, 디자이너 등등 꿈꾸는 직업이 다양하다. 연봉이나 안정성보다는 ‘흥미있는’ 게 장래희망이다. 중학생이 되면 점점 현실을 알아간다. 특히 중학교 2학년 첫 시험에서 미래직업의 궤도가 세팅된다. “내 성적으로는 의사, 판·검사는 안 되겠구나”는 걸 알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실은 아폴론 신전에 적힌 말임)의 뜻이 현실에서는 왜곡되어 받아들인다. 고등학생이 되면 최상위층과 중·하위층 학생들 간에 꿈이 갈라진다. 초등학교 때 연예인이 되려고 했던 꿈은 예술고 학생이 아닌 한 거의 사라진다. 최상위권이 아닌 한 의사가 되려는 꿈은 접고 보건학부를 선택한다. 판·검사, 고등고시보다는 9급·경찰·소방공무원으로 꿈이 현실화된다. ‘바이오’, ‘의약’, ‘메디컬’을 붙여 학생들을 유인하지만 간호학과, 치위생학과보다 취업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걸 학생도, 엄마도 다 안다.

넷째, 학과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고, 수요자의 생각에 정확히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융합의 시대’라 하더라도 학과명에 그럴싸하게 ‘융합’을 덧붙이는 건 신중을 기해야 한다. 수요자들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영어문화학과, 한국어문화학과, 공공인재학과, 행정학과보다 경찰행정학과, 소방행정학과의 입시 경쟁률이 높다. 입학 후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했더니 경찰·소방공무원이 빨리, 그것도 확률상 합격이 더 잘 되더라는 걸 수요자가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현실을 인정하고 빨리 구체적이고,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것이다. 저성장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다.

저성장시대에는 학생들이 원하는 직장을 3종 이내로 압축해서 열심히 공부하면 그 안에 70% 이상이 취업한다는 걸 학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국시를 통과하면 90% 이상 취업이 되는 간호학과와 치위생학과가 인기가 있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피부미용학과는 뷰티케어학과로 변신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다. 아름다움(美)을 추구하는 학문답게 센스있게 보인다. 그렇다고 여기에 ‘AI뷰티케어학과’라고 하면 학생이 오질 않는다. 너무 앞서가기 때문이다. 반 발짝만 앞서간다면 ‘스마트뷰티케어학과’ 이름이 적절하다. 기존의 피부미용학에 4차산업혁명 기술인 IoT, 빅데이터, AI를 10-20%정도만 가미하는 수준이다. 피부미용화장품과학과와 같이 너무 복잡하면 시장이 외면한다. AI, IoT, 핀테크, 로봇 등을 인문사회과학 관련 학과에 5:5로 적용시킬 경우 중도 탈락 학생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인문사회 자기 전공 : 4차산업혁명 기술 = 8:2 정도로만 접목해서, 자기 전공 관련 직장을 정확하게 타깃으로 설정하되 타 대학 학생들에 비해 차별화될 수 있는 인재로 만드는 게 현실적이다.

‘학과의 변신은 무죄’다. 저성장시대에 지역대학 학과의 몸부림이 성과로 나타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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