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젊은 소리가 온다] ⑤ 김보림의 ‘적벽가’

최혜진 목원대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0.11.23 14:4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최혜진 목원대 교수
최혜진 목원대 교수
올해 대전시립연정국악원 기획공연인 ‘판소리 다섯 마당’은 지난 7월 유태평양을 시작으로 매월 전태원, 이진우, 이윤아로 이어져 오는 26일 마지막 공연인 김보림의 '적벽가'를 앞두고 있다. 이 기획공연이 특별한 이유는 차세대 명창인 젊은 소리꾼들을 초청하여 이 시대 판소리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보는 판소리는 보통 ‘인간문화재’인 대명창들이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명창’의 반열에 오른 중견 소리꾼들이 많다. 소리를 시작하고 수십 년이 된 공력으로 판소리를 하지만 그들은 늘 넘어야 할 산이 높다고 겸손을 잃지 않는다.

판소리가 가진 노래로서의 벽은 너무도 높다. 일평생을 하여도 명창 소리를 하게 될지 그것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다른 곳에 눈돌리지 않고, 배고픈 것을 당연히 여기며 판소리에 매진할 젊은 소리꾼들이 많을 리 없다. 그것이 가장 문제다.

그러나 젊은 소리꾼들이 가진 에너지와 창의성이 녹록치 않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미 네 바탕의 소리를 들으면서 전통 판소리를 이어가는 기특하고도 빼어난 소리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보면 우리 판소리의 미래가 너무도 기대되고 그들에게 감사하기까지 하다.

판소리 중에서도 특히 충청도 사람들이 하는 판소리란 현대에 세력을 얻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해방이후 판소리는 전라도에서 많은 명창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청지역은 판소리 최초의 명창이자 양반광대 최선달 최예운이 나온 고장이고, 일제강점기까지 심정순, 이동백, 김창룡 등 전국을 호령하던 대명창들이 나고 자라며 활동하던 곳이었다.

이 후예를 이은 분이 바로 박동진 명창인데, 박동진 대명창의 즉흥성과 창조력은 지금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박동진 명창은 공주에서 출생하여 대전중학교를 졸업할 정도로 식견을 갖추었고, 다른 사람들이 걷지 않았던 완창 판소리, 창작 판소리의 길을 개척한 분이다. 소리꾼들이 다섯 바탕 소리도 채 배우지 못할 때, 박동진 명창은 다섯 바탕 완창은 물론 실창된 열 두 바탕의 소리를 복원하고 신작 판소리까지 창작하였던 놀라운 분이다.

이러한 박동진 명창이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은 작품이 바로 '적벽가'이다. 박동진의 '적벽가'는 충청도 출신 양반 광대 정춘풍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에 신재효, 북에 정춘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9세기 중반 쌍벽을 이루었고, 신재효가 이론에 승할 때 정춘풍은 이론과 실기에 모두 능했다는 점에서 더 인정을 받았다. 그런 정춘풍이 제자 박기홍에게, 박기홍은 조학진에게, 조학진은 박동진에게 그 뼈대를 물려주었던 것이다.
박동진 명창은 여러 스승에게 좋은 소리를 받아 자신만의 색깔로 '적벽가'를 완성시켰다. 웅장하고도 스펙타클한 전개, 유머러스한 사설 등을 담고 있는 박동진제 '적벽가'는 충청도 소리꾼이 전승할 때 더 그 맛이 살아날 것이다. 공주의 박동진판소리전수관에서 제자를 알차게 길러내고 있는 김양숙 관장은 엄격하고도 분명하게 소리를 전승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유서깊은 '적벽가'를 젊은 소리꾼 김보림이 부른다. 김보림은 대전에서 태어나 다섯 살 무렵부터 김양숙 관장의 지도를 받고, 국악예고를 거쳐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재원이다. 김수연 명창에게 '심청가'를, 이난초 명창에게 '흥보가'를, 안숙선 명창에게 '수궁가'를 두루 배워 좋은 바탕소리를 계승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래, 가장 많이, 가장 익숙하게 배운 것이 '적벽가'라고 하니 무척 기대가 된다. 더욱이 남성적인 '적벽가'를 여성이 부를 때 어떻게 표현이 될지를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적벽가'는 중국의 소설에는 없는 군사설움타령, 적벽화전, 군사점고, 새타령 등을 대거 넣으면서 영웅의 이야기에서 군사들의 이야기로 그 시각을 전환시킨 조선의 작품이다. 이 중 하이라이트인 적벽화전의 죽고타령을 보면 주제가 선명해진다.

‘적벽강 수전군사 화염 중에 다 죽는다 숨막히고 기막히고 살도 맞고 불에 타고 물에 빠져 일시에 다 죽는다 앉어 죽고 서서 죽고 울다 죽고 자다 죽고 꿈꾸다 죽고 말하다 죽고 밥숟갈 들고 죽고 술통 들고 죽는 놈과 돈세다 죽는 놈 달려들다 죽는 놈과 재조 넘다 죽는 놈 오사 급사 천사 만사 횡사 수사 몰사할 제 (중략)... 물에 가 풍 거품이 뿌그르르 사람을 모두다 국수가닥 풀듯 풀어 적벽강이 빽빽 일등명장이 쓸 데 없고 날랜 장졸이 무용이다’

우리 판소리가 주목한 것은 전쟁에 승리한 영웅이 아니라 그 전쟁통에 하염없이 죽어간 불쌍한 군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등명장이 쓸 데 없고 날랜 장수도 모두 쓸모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조조는 조롱당하고, 군사들은 원조가 되어 자신의 장수 앞에서 원망의 노래를 부른다. 조선의 힙한 생각이 바로 이렇게 '삼국지연의'를 비틀었던 것이다.

김보림의 '적벽가'를 감상하며 미래의 판소리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