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부여] 윤용태 기자 = 부여 내산면 지티리가 부여군 최초 의병봉기 발원지로써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의병성지’로 면모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부여군은 지티리에 ‘의병 봉기 유적지’라는 사업 명으로 토지매입비 및 기념비 건립에 예산 1억3000여만원을 확보해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로써 지티리는 그동안 묻혀 있던 부여 의병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지티리가 의병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홍주의병에서 기인한다.
1차 홍주의병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반발해 봉기했다.
2차 홍주의병은 1905년 을사조약(제2차 한일협약)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이조참판을 지낸 민종식이 1906년3월경 병오1차 의병을 예산군 광시에서 봉기해 홍주성 함락을 목표로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해 5월9일 와신상담을 하며 기회를 엿보던 민종식이 부여 지티리에서 의병장에 재추대돼 병오2차 의병이 봉기했다. 이들 의병은 홍산군 관아를 점령하고, 이후 서천, 비인, 남포, 보령, 오천, 결성을 거쳐 5월19일 홍주에 입성했다.
홍주성을 함락하는데 성공했지만, 일본군의 반격으로 의병 수백 명이 사망하고 일부는 대마도로 유배를 당하는 등 피해가 극심했다.
우여곡절 끝에 화를 피한 의병들은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각종 비밀조직을 결성해 일제의 만행에 항거투쟁을 이어갔다.
이런 역사를 갖고 있는 지티리는 민종식이 홍주의병장에 재추대된 장소라는 점과 2차 홍주의병 재봉기지라는 점, 특히 부여군 최초 의병봉기 발원지라는 점에서 의병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장소다.
독립운동사와 의병사 등 많은 저서를 펴낸 김상기 충남대 명예교수는 “‘지티의병’이라 칭해도 될 것 같다”는 조심스런 소견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부여군은 지티리를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역사와 교육의 장으로 조성코자 하는 배경이 담겨있다.
조춘환 사업추진위원장은 “먼저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게 해 준 부여군에 감사하다”고 밝힌 후 “지티리에 의병 봉기 유적지가 완성되면 부여 의병사가 재조명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역사의 장인 이곳을 찾아 선조의 구국운동 의미를 되새기기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