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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바둑으로 배우는 삶의 지혜

도순구 전 충남개발공사 관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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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12.27 14:40
  • 기자명 By. 충청신문
도순구 전 충남개발공사 관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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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프로바둑기사가 운영하는 대전의 한 기원(棋院)으로 계룡산에서 도를 닦던 강(康)도사라는 사람이 찾아 왔다. 자신이 20여년간 수도하여 바둑의 이치를 깨달았다며 대뜸 프로기사에게 대국을 청하더니 슬그머니 백을 쥐었다. 그러나 대국결과는 연전연패, 이윽고 백을 빼앗기고 9점을 놓고 두는 수모까지 당하고 말았다. 2001년 작고한 국내 1호 프로기사 김태현 4단에 얽힌 에피소드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옛날 한양에 국수급 바둑실력을 가진 대감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지방에서 올라온 한 젊은 선비가 찾아와서 문안인사를 하고는 대국을 청했다. 가소로운 생각이 들어 거절할까 생각하다가 말(馬) 한필 내기를 하자는 선비의 제안에 대국을 허락했는데 예상대로 대감의 불계승으로 끝났다.

말 한필을 잃은 선비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보름 후에 다시 대국할 것을 희망했고 대감은 껄껄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이윽고 보름 후 재 대국이 이루어 졌는데 이번에는 젊은 선비가 어찌나 잘 두는지 오히려 대감이 쩔쩔매다가 지고 말았다. 결국 보름 전에 빼앗았던 말(馬)을 다시 내주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바둑실력이 불과 보름사이에 이토록 크게 향상되기는 어려운 것이므로 대감은 뭔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난 대감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선비를 붙잡아 역정을 내며 추궁하였더니 젊은 선비가 하는 말이 다음과 같았다. “과거시험을 보러 시골에서 한양에 올라 왔는데 말(馬)을 맡길 곳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 이야기는 픽션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바둑에 얽힌 이 두 가지 에피소드는 마치 걸리버의 여행기를 보는 듯하다. 자신이 아무리 최고라고 생각하더라도 정저지와(井底之蛙) 즉 우물 안의 개구리일 수도 있으므로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흔히 바둑을 인생에 비유한다. 그 이유는 한판의 바둑에서도 한 사람의 인생처럼 무한한 변화가 일어나고 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바둑을 둘 때 명심하고 준수해야 할 열 가지 마음가짐을 강조한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때 바둑의 명인 왕적신(王積薪)이 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비록 바둑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교훈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그중에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 꼭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입계의완(入界宜緩)’이다. 이 뜻은 경계를 넘어 설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승패의 갈림길에서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함을 알려준다.

다음은 ‘신물경속(愼勿輕速)’으로, 이는 바둑을 경솔하거나 졸속하게 두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인생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뜻으로도 여겨진다. 스피드의 시대를 살면서 마음까지 급해진 현대인이 꼭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다.

끝으로, ‘동수상응(動須相應)’이다. 자신이 둔 바둑알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뜻으로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임을 알려준다. 글로벌한 사회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잘 형성하여 우군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최근 인간관계의 가치는 관계자산(Relation capital)으로 까지 부각되고 있고, 프랑스의 경제학자인 자크 아탈리도 “성공을 위해 관계자산을 키우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른 바둑 수에 길(道)이 있다는 뜻으로 알려진 기정유도(棋正有道)의 정신은 우리의 인생길에서 얄팍한 속임수로는 세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없음을 가르쳐주는 교훈중의 교훈일 것이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겨웠던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신축년 새해에는 보다 행복한 세상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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