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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일상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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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1.11 16:05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 음성예총회장
강희진 음성예총회장
2021년 새해가 밝았다. 당연히 설레고 가슴 벅찰 때인데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와 싸우고 있다.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지면서 회의나 소모임조차도 할 수 없는 날들이다. 그렇게 바뀐 일상이 이제는 익숙해지면서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저녁 모임이 있었다. 어쩌다 일찍 귀가한 날은 이런저런 밀린 일들을 하고는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오후 6시만 되면 들어오게 되었다. 은연중 바뀐 일상이 가끔 생소해지곤 한다.

해마다 연말이면 여행을 떠나는 모임 친구들이 있다. 올해는 당연히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은 가끔 만나 수다도 떨고 좋았는데 유치원 원장들이라 더는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모두 강의하는 사람들이라 자연스럽게 ZOOM으로 만나고 있다. 돌아가면서 초대를 하고 안부를 묻고 얼굴을 보고 코로나 시대를 함께 이기는 방법을 공유한다.

그들 친구 중 한 명이 콩나물 기르는 것을 추천했다. 집에 일찍 들어와 콩나물이 커가는 것이 신기하고 예쁘다며 밴드에 올렸는데 다 키워 콩나물국을 끓여 먹는 것까지 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그래서 나도 키워보려고 인터넷에서 콩나물시루를 주문했다. 승무원인 큰아이도 코로나 여파로 집에 내려와 있어 함께 키워보고 싶어졌다.

먼저 쥐눈이콩을 씻어서 싹을 틔웠다. 뾰족뾰족 싹이 튼 것을 시루에 안치고 볕이 들지 않게 뚜껑을 덮었다. 아침이면 큰딸에게 시간 맞춰 물을 주라는 주문을 하고 집을 나선다. 처음에는 시루 값 1만5천으로 콩나물을 사면 어마어마하겠다고 시큰둥하더니 커 가는 게 재미가 있다면서 관심을 보였다. 외출해서 돌아오면 콩나물의 안부가 궁금했다. 큰애가 틈틈이 물을 주어 그런지 아침에 나갈 때보다 쑥쑥 자라있는 게 신기했다. 정채봉 시인의 시 “광야로 내보낸 자식/콩 나무가 되었고,/온실로/들여보낸 자식/콩나물이 되었고.”라는 시를 읊으며 아이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시 낭송을 해서 밴드에 올렸다. 2019년 이태리 베니스 여행을 갔을 때 곤돌라를 타고 내가 읊었던 시 낭송이 너무 멋있었다며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제각기 개성에 맞는 시를 골라 밴드에 올렸는데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잊어버리고 있었다. 친구 한 명이 몇 번 시도 끝에 올린다며 음악과 함께 올리고 자신이 했던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래서 다음 친구가 그 방법대로 또 올리고 서로 시 낭송을 공감하는 그 소소한 재미가 좋다. 다음에는 어떤 친구가 코로나 시대를 견디는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며칠 전 홈쇼핑에서 오디오를 하나 샀다. LP판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카세트테이프도 되고 CD를 들을 수도 있다. 거기에 USB를 꽂을 수도 있고 그 위에 라디오 기능까지 겸했다. 요즘 자동차 안에도 CD를 들을 수 없다. 차 안에서 음악이 듣고 싶으면 블루투스로 연결해 핸드폰으로 들으면 되니 다른 기능은 필요 없다. 그러니 LP판이나 CD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홈쇼핑 방송을 보고 이거다 싶어서 샀는데 대만족이다. 남편은 음악을 좋아한다. 결혼할 때 혼수로 턴테이블만 해 오면 된다고 했을 정도이다. 그때 들었던 LP판을 버리지 못하고 베란다에 두었었는데 보물 상자를 열 듯 개봉했다. 그룹 아바, 칭기즈칸,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김청자 가곡 제1회 대학가요제를 비롯해 수많은 LP판이 있었다.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서 걱정되었지만 지지직거리는 LP판 특유의 음악을 들으면서 잊고 지냈던 많은 기억을 떠올렸다. 집에 와서도 텔레비전 대신 라디오를 켠다. 우리 젊은 시절 얼마나 많은 추억이 라디오로부터 시작되었는가. 거기에 작은아이가 스포츠 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까지 있으니 또한 행복하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먼지가 앉을 정도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들이다. 공포스러운 전염병으로 뜻밖의 여유시간이 많아지면서 라디오와 LP판 등 오래전의 추억에 젖어보기도 하는 날들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어린 왕자의 ‘길들이기’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는 요즈음이다.

아무리 길들여진다 해도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이 사상 초유의 전염병 때문에 암담하다. 유사 이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세기말적인 전염병이 강타했지만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가 긴장할 때는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분위기 전환으로 돌파구를 찾아 조금이나마 위로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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