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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언제까지 미안하다고만 할 것인가”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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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1.13 23:08
  • 기자명 By. 충청신문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2020년은 코로나가 던진 충격으로 절망적인 한 해를 보냈다. 과거 사스나 메르스처럼 잠시 유행하다 사라질 것이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다. 마스크가 이제 생활필수품이 되었고, 외출조차 타인의 눈치를 볼 정도로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펜데믹 현실을 인정하고 비교적 정부의 방역 지침도 잘 따랐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선진국이라 자부하던 미국과 유럽 각 나라들의 실상을 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아직은 다소 막연하긴 하지만 뭔가 달라질 것이란 기대와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2021년, 우리는 다른 차원의 충격 속에 새해를 시작하고 있다. 생후 16개월짜리 정인이의 죽음을 접하고 부터다. 그 죽음은 학대에 의한 살인이란 점에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인이는 겨우 생후 16개월 만에 죽임을 당했다. 아이가 얼마나 고통을 겪어왔는지 죽음 직전엔 본능적인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 무감정 상태였다. 숨을 거두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겪은 일을 한 많은 세상에 알렸다. 아이의 죽음을 통해 위선적인 양부모의 행태가 드러나고 있다. 양엄마의 지속적인 폭행과 방치, 양아빠의 방조와 발뺌 등이 방송과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심지어 다자녀 혜택을 노린 기획입양설까지 나돌아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신만이 우리를 심판할 수 있다”며 반성조차 없는 그 인성이 더욱 화나게 만든다. 그 양엄마는 지금 아동학대치사죄에서 살인죄로 기소돼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의 분노는 비단 양부모 뿐 만이 아니다. 3차례 신고에도 무혐의로 사태를 방치한 경찰과 형식적인 관찰로 일관한 아동보호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 중 어느 한사람이라도 세 번이나 신고 되기까지 책임감을 갖고 살펴봤더라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차에 방치한 아이를 발견한 이웃이, 진료한 소아과 의사가 아동학대로 신고했지만 책임 있는 사람들은 한 번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그들을 향한 비난의 뭇매가 쏟아지는 이유다.

아동학대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것은 2013년 울산 서현이 사건이다. 당시 8살이던 서현이가 의붓어머니에게 지속적인 폭행과 학대를 당한 끝에 사망한 것이다. 계모는 아이의 친부와 함께 살기 시작한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학대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계모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아이는 갈비뼈 16개가 부러졌고, 그 뼈가 폐를 찔러 과다 출혈로 죽게 만들었다. 그 이전에 서현이의 멍자국을 본 유치원 교사가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신고했지만 결론은 혐의 없음이었다. 한 번의 기회가 또 있었다. 계모가 남편과 다툰 후 샤워기로 아이의 손과 다리에 뜨거운 물을 뿌려 2도 화상을 입혔을 때다. 하지만 이때도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이때라도 제대로 원인을 밝혔더라면, 누군가 관심을 갖고 들여다봤으면 이쯤에서라도 막을 수 있었다. 정인이 사건과 판박이처럼 데자뷰되는 7년 전 일이다. 항소심 법원은 계모에게 ‘살인 고의성’을 인정, 살인죄로 징역 18년형을 선고했다.

끔찍하고 비극적인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작년에도 발생했다. 계모가 9살짜리 의붓아들을 7시간여 여행 가방에 감금해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계모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대 행위를 벌였으며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했다. 사망 당시 아파트에는 계모의 친자녀 두 명도 함께 있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결국 계모는 살인죄로 징역 22년형을 선고받았다.

위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처럼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데도 대처는 늘 사후약방문식이다. 대책은 그때마다 세워지는데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아동학대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인데도 그렇다. 물론 아동학대 인식 개선 및 시스템의 변화로 수면 아래 묻혀있던 아동학대가 수면 위로 올라와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핵심은 매년 2만 명 이상의 아동이 누군가로부터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8년 통계를 기준으로 재 학대를 받았다고 신고가 접수된 아동이 2500명 정도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국민적 공분에 대해 여야는 모처럼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에 뜻을 모았다. 지방자치단체나 수사기관이 아동학대 신고를 받으면 즉각 수사에 들어가고, 경찰·공무원의 권한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그럼에도 신뢰가 가지 않음은 그동안의 전례 때문이다. 그동안은 법과 제도가 없어서 그랬나? 아동학대 전례가 없어서 그랬나? 고통스런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눈치 채지 않아서 그랬나? 아니지 않는가. 이제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의 정인이가 나타나지 않도록 말이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 아이들은 생명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또한 당신과 함께 있을지라도 당신의 소유물은 아닙니다. -킬린지브란의 ‘예언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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