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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가는 국민을 죽여도 되나?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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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2.14 10:1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위헌심판을 지켜보면 사회 전반의 의식 흐름을 알 수 있다. 헌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시대마다 가치관을 달리한다. 그래서 같은 법률이라도 시대에 따라 합헌 결정을 받았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위헌결정을 받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같은 법률이라도 몇 차례 위헌심판의 대상이 된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위험심판대에 오르다 보면 훗날 종전과는 다른 판결을 받는 사례가 많다. 사형제 폐지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도 그런 과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헌재에 사형제도 폐지 의견서를 냈다. 앞서 2019년 2월 천주교계는 사형제도 자체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제기한 상태이다. 헌재는 이에 대해 위헌심판의 결정을 앞두고 있다. 지금껏 헌재에 사형제의 위헌심판이 청구된 것은 두 차례로 96년에 7대2, 2010년에 5대4로 각각 합헌 판결을 내렸다. 두 차례의 판결 결과를 통해 사형제를 바라보는 헌법재판관의 시각이 변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이는 국민 의식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국제연합(UN)회원국 또는 옵서버 자격 국인 195개국을 살펴보면 106개국이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했다. 비율로는 전체 국가의 54.4%이다. 7개국은 전쟁범죄 등 특수범죄를 예외로 두고 있지만, 일반적 사형제는 폐지되었다. 47개국은 사형제도의 집행을 허가하는 법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은 여기에 해당한다. 17.9%인 35개국은 여전히 법과 관행으로 국가에 의한 사형이 유지되고 있다. 큰 틀에서 78.5%인 153개국이 사형제를 폐지했거나 실제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은 97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사회 대중의 관심사로 부상한 것은 오래전부터다.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매번 총 8차례 사형제도 특별법이 발의된 것을 보더라도 사회적 여론이 사형제 폐지로 무게중심을 옮겨온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사회성숙도와 국민 의식 수준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도 사형제 폐지국 반열에 올라서는 것이 맞다. 실질적 폐지국가에서 벗어나 당당히 완전한 폐지국가가 돼야 한다.

국가는 피해 국민을 대신해 범죄자를 단죄하지만, 그 방법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국가가 국민을 대신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상당수 의식 있는 국민은 자신이 국가에 국민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까지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무리는 사법적 오판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는 많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국민은 범죄를 소탕하는 유일한 방법이 엄격하고 가혹한 법 집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은 자에 대해서는 똑같이 그의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금부터 3770여 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통용되던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 집행의 법 감정이 여전히 현재 사회에도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가 발생하면 근본적 원인을 찾아내고 사회구조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최상의 대책이지만, 그보다는 감정을 앞세우는 이들이 사회에는 여전히 많다.

흔히 범죄는 개인의 일탈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적 환경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흉악범죄는 계획적인 경우보다 우발적,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는 점도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사형은 국가가 범죄의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돌리려는 의식에 기반한다. 사형제는 흉악범죄자를 영원히 사회와 완벽하게 격리하겠다는 목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사형이 아니더라도 흉악범을 사회와 완벽하게 격리할 방법은 있다. 헌재는 국민의 보편적 인권의식을 고려하고, 날로 성숙해가는 사회 전반의 법 감정을 고려해 이번에는 사형제에 관해 위헌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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