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보은] 김석쇠 기자 = 춤으로 전하는 통일의 염원. 2002년 창단된 평양민속예술단이 추구하는 모토이다.
북한 자강도 전천군이 고향인 김옥인 단장은 9살 때부터 무용수로 발탁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조선민족무용을 전공하며 최고의 기량을 갖춘 무용수로 성장했다.
김 단장은 1994년이후 북한이 어려운 생활경제난을 겪자 30세이던 1997년에 중국으로 탈북하게 되었고 탈북민들 누구나 겪게 되는 물질적·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안무가의 꿈을 접은 채 4년간 중국에서 살았다. 이후 2001년 중국에서의 피난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오게 됐다. 이후 북한문화예술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12월 북한에서 예술을 전공한 동료들을 만나 ㈔평양민속예술단을 창립하고 북한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무용부분을 담당하는 안무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큰 인기를 얻자 예술단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신입 단원들도 늘어났다. 김 단장은 그들에게 북한의 무용과 노래를 전수시켜 함께 공연에 참여시키는 교육자의 역할을 병행하며 무용가로서의 보람을 더했다. 대만, 필리핀, 베트남 등 해외공연도 펼쳐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코로나19는 예술단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김 단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옥인TV 북에서 온 미녀무용가의 대한민국 기행’은 북한생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약 4만명에 이르는 탈북민들에게는 북한과 다른 남한 사회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정월대보름-올 한해 더위를 모두 사가시라요’, ‘설날 특집-한강유람선을 처음 타 본 평양여자’, ‘최북단 DMZ-파주 비무장지대 사람사는 이야기’ 등 그때 그때 시의적절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있다.
김 단장은 한국영상대학교 연기과 객원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MBC ‘우리는 한국인’, KBS1 ‘가요무대’, KBS1 ‘국악한마당’, SBS ‘강호동 스타킹 쇼’, 광주MBC ‘우리 가락 우리 문화’, TV조선 ‘모란봉 클럽’ 등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또 국제사이버대학에서 웰빙귀농학을 공부하고 있다.
“공연무대 복원돼 활발한 활동 재기되길”
김옥인 단장
• 평양민속예술단이 한국 사회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데
- 2002년 12월에 평양민속예술단이 창단된 이후 해마다 130여 회 이상 공연을 하고 있다.
• 예술단의 단원 인원과 인기 비결은
- 20명이며, 남북통일을 바라는 마음과 사명감을 갖고 활동한 것이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 평양예술단을 창립 하게 된 동기는
- 남과 북의 문화적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북한에서 유행되고 있는 전통민요들과 대중 문화들을 한국 무대에서 함께 고유하므로써 통일의 길을 앞당기고자 하는 마음에서 창립하게 됐다.
• 평양예술단과 같은 탈북민들로 구성된 단체가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평양예술단은 전문성을 띤 예술인들로 구성됐다. 북한예술의 장점을 살려 앙상블 위주의 작품들로 무대에 올리고 있다.
• 탈북민들로 구성된 예술단이 단일화 되어 함께 활동한다면 대표성을 더욱 내세울 수 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계획은
- 계획은 있지만 모든 것이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 북한에서 활동할 때와 차이점은
- 북한에서는 체제의 내용과 동 떨어진 예술을 할 수가 없었다. 남한에서는 예술적인 표현도 자유롭고 나 혼자서도 초청받아 공연할 수도 있다.
• 코로나19로 인하여 공연이 중단된 상태다.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 단원들은 각자 다른 알바일들을 하고 있다. 예술인들이 무대생활을 해야 더 생기가 살아 날건데 참으로 아쉬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
• 단장님은 무용가로서 활동하고 있는데 다른 예능은 어떤지
- 노래를 조금 한다. 요즘에는 무용보다도 노래가 더 인기가 좋은 것 같다. 무용과 접목하면 어떨까 생각중이다.
• 앞으로 활동계획은
- 코로나로 인해 못했던 공연들을 활발히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
• 지금 가장 어려운 점은
- 코로나19로 공연이 없는게 어려움이다. 하지만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는 생각으로 예술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고 있다. 통일의 마중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건과 기회를 마련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