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비누오페라(Soap Opera)라는 것이 있다. 주로 아침시간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일일드라마를 비꼬는 말인데, 주부들이 주요 타겟이어서 중간광고에 비누와 세제 광고가 넘쳐나서 비누 오페라로 불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멜로드라마는 원래는 18세기 후반 유행하던 문학 사조였는데 음악(melo)와 극(Drama), 멜로디가 있는 드라마라는 음악극을 뜻했다. 당시의 멜로드라마는 특정한 형태의 틀을 따랐다.
우연, 대립, 선택, 편가르기, 복선, 반전, 변화(권선징악).
회사에서 여주인공이 야근을 하다 다친다. 마침 자리에 있던 재벌 2세가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는 장면을 ‘우연’히 여주인공의 약혼자가 발견한다. 오해가 쌓이고 재벌2세의 약혼녀도 질투하게 되어 주인공과 ‘대립’하게 된다. 재벌 2세와 여주인공은 각각의 약혼자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이를 주위에서 조력하는 주인공 지인들과 그들을 공격하는 무리들로 ‘편가르기’가 진행된다,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는 극 중 주인공이 아파 나중에 불치의 병을 앓게 되는 강한 ‘복선’이 등장하거나 통쾌한 복수극일 경우는 마지막에 대‘반전’을 선사할 주인공의 숨겨진 과거나 제3의 인물이 복선으로 등장하고, 마침내 악한편은 패망하고 주인공은 사랑을 쟁취하는 ‘권선징악’이 펼쳐진다. 악역이 악하면 악할수록, 나중에 처절히 망해가는 모습에서 관객의 카타르시스는 배가 된다. 욕하면서도 볼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렇듯 우리에게 익숙하기만 한 멜로드라마의 문법은 현대에 와서 뻔한 통속극이나 사랑타령을 일컫는 말로 변질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엔 서양의 뉴 웨이브 운동(New Wave)의 영향으로 서양 연극들이 수입되었는데 이를 기존의 일본 가부키 정극과 비교하여 새로운 물결인 신파(新派)라고 구분하여 불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시대 서양 멜로드라마 양식이 수입된 것이고, 주인공과 반대세력의 대립을 명확히 하고 반전의 극대화를 위해 주인공의 비련함과 애잔함을 강조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현대에는 억지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는 최루성 작품을 신파로 통칭하며 비꼬아 부른다.
현대의 자동완성에 해당하는 뜻으로, 프랑스에서는 많이 쓰이는 단어를 미리 조합해 놓은 인쇄 기판을 연판(Cliché;클리셰)라고 불렀는데, 같은 부분을 찍어낸 듯 뻔하고 상투적인 장면을 나타낼 때 쓰인다. 못된 시어머니가 며느리감에게 카페에서 물을 뿌린다거나, 죽은 줄 알았던 악당이 스르륵 일어나서 주인공에게 일격을 가하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비슷하게 플래그(Flag)라는 뜻도 쓰인다. 본래는 프로그램 언어에서 특정상황을 결정할 변수를 뜻하는 용어였는데 지금은 뻔한 클리셰 장면을 유도하는 변수로 쓰이는 것을 조롱하는 은어로 쓰인다. 대표적인 예가 사망 플래그인데, 이를테면 치열한 전장에서 잠깐의 휴식 동안 갑자기 동료군인이 지갑에서 가족들 사진을 꺼내보며 이번 전투만 끝나면 집에 돌아가서 가족을 만날거라는 다짐을 하면 그 인물은 반드시 마지막에 죽는 클리셰를 말한다. 꼭 살아 돌아온다고 다짐하던 신병은 찰나의 순간에 안타깝게 죽고, 이번 마지막 임무만 마치면 제대하고 고향에 돌아가 농장에서 소를 키울거라며 희망을 꿈꾸던 말년병장은 반드시 전사하는 장면들이 사망 플래그다. 클리셰도 멜로드라마의 복선과 반전, 그리고 최루성 신파의 법칙을 다르게 표현했을 뿐 같은 개념으로 쓰였고, 관객의 눈물을 짜내기 위해 신파도 작품에 양념으로 첨가된다. 상업영화의 흥행에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4세기 역사의 어렵게만 보이는 오페라도 기본 문법은 멜로드라마 형식이다. 19세기 모차르트 오페라는 현대 일일드라마와는 견줄 수 없는 막장드라마의 최고봉 보마르셰의 희극을 원작으로 했다. 어찌 보면 4세기 동안 흥행공식이 딱히 변한게 없다. 반면 오페라를 어렵게 느끼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기도 하다. 익숙한 드라마구조에 음악까지 훌륭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