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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새봄 건축의 길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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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3.14 15:2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지 벌써 1년이 넘었다.

3월 새 학기가 되었지만 비대면 수업으로 왁자지껄할 캠퍼스는 조용하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경우이다. 우리가 학생들을 만나고 지인을 만나는 것에 이렇게 애틋한 적이 있었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코로나 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일들이 지금은 당연한 일들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없는 가운데 비대면 수업을 한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성스레 강의 준비를 하고 학생들에게 다가가려고 안간힘을 써본다.

새 봄 첫 강의에 ‘건축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달았다. 학자마다 학설이 다르겠지만 승효상 건축가의 사상을 담았다. 건축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고 굳게 믿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부부가 같이 오래 살면 서로 닮는다고 한다. 한 공간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까닭에 그들의 삶이 그 건축의 규율을 같이 학습하며 그 공간의 지배를 받아 습관도 바뀌고 결국 얼굴 생김도 닮아간 결과라는 것이다. 수도하기를 원하는 이가 외딴 곳의 작고 검박한 공간을 찾아 떠나는 것도 그 격리되고 탈속한 공간이 자신의 분심을 억누르고 오욕칠정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도 타임지와 회견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 말은 좋은 건축은 좋은 삶을 만들지만 나쁜 건축은 나쁜 삶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좋고 나쁨이 화려함과 초라함에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화려한 건축 속에서는 삶의 진실이 가려져서 허황되고 가식의 삶이 만들어지기 쉬우며 초라한 건축에서 바르고 올곧은 심성이 길러지기가 더 쉽다. 비록 그 건축의 효능이 우리가 즉각적으로 느끼기 어렵도록 더디지만 건축은 우리의 삶을 바꾸면서 우리의 인격체를 완성하는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대상인 것이다.

건축은 일본인이 그들의 근대 개화기였던 메이지 시대 때 만든 말이라고 한다. 그 전에 그들은 造家라는 단어를 건축 대신에 쓰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건물이 아니라 한 집안을 만든다는 造家라는 단어가 建築이라는 물리적 운동만을 뜻하는 것보다는 일면 의미가 깊어 보이기도 한다. 세우고 올린다는 육체노동의 이 建築이라는 뜻으로는 오묘한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는 건축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 선조들은 건축이라는 말 대신 참 좋은 단어를 사용했었다. 한자말이긴 하지만 營造가 그것이다. 우리말로는 ‘지어서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다. 집은 세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고 시를 짓듯이 집은 지어서 만드는 것이다. 짓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생각과 뜻과 마음을 통하여 전혀 다른 결과로 변화시켜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 건축이라는 깊은 뜻을 내포한 것이다. 건축의 평면도가 이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집 안에서 일어남직한 행위들을 추정하여 그 행위를 담는 공간을 정하고 그 사용자의 수를 예측하여 크기를 결정한 후 기능별로 그 순서를 정해 조직하면 기초적 평면도가 된다. 예컨대 생리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공간인 변소도 옛날에는 불결한 곳으로 간주하여 뒷간이라고 불렀지만 요즘의 주거에서는 평면도의 가운데에 배치되면서 이름도 화장실로 바뀌었다. 굳이 건축을 다른 학문의 분류에 넣으려 하면 인문학에 가깝다.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력, 역사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물에 대한 사유의 힘이, 이웃의 삶에 대한 애정과 편의를 고려하여 작업해야 하는 건축가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건축은 집을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집은 하부구조이며 그 집 속에 담기는 우리들의 삶이 그 집과 더불어 건축이 된다. 우리의 삶을 짓는다는 것이, 건축의 보다 분명한 뜻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날마다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건축이 참 좋은 건축임에 틀림이 없다. 건축은 우리의 삶이 지혜를 통과하면서 지어져 나가는 것이다. 이를 손만으로는 결코 세울 수 없을 것이다.

학생들이 없는 강의실에서 온라인강의를 하니 무미하다. 더더욱 학생들이 보고 싶다.

계절이 징검다리를 오가 듯 흐르는 계절이 내 곁을 스치고 있다. 캠퍼스 숲길을 걷다 보면 길섶에는 이름 모를 들풀들이 파릇파릇 앙증맞게 새싹을 터트리고 있다. 일찍 개화한 매화와 수선화, 노란 산수유 꽃잎이 곱고 애잔하게 가슴에 다가와 새록새록 봄의 기운을 전해준다. 자연은 신(神)이 쓴 위대한 교과서라고 했다.

자연의 혜택 속에서 건축과 문학의 만남은 예술이라는 장르의 공통분모를 형성하며,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무한한 힐링 요소를 품고 있다. 코로나19로 삶의 지형도가 바뀌었지만 건축의 길을 생각하며 새봄과 함께 영혼을 맑게 한다. 건축의 길을 함께 할 학생들의 얼굴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아름다운 건축은 시들지 않는 꿈이며 인류의 발자취에 지지 않는 꽃으로 살아 숨 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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