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듣는 용어 몇몇 중 ‘개혁’과 ‘혁신’이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뭘 그렇게 개혁하자는 건지, 뭘 그렇게 혁신하자는 건지 몰라도 살다 보면 듣고 싶지 않아도 거의 매일 ‘개혁’과 ‘혁신’이란 말을 듣게 된다.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모든 조직에서 이 두 말은 모든 구성원의 귀에 환청이 생길 정도로 자주 쓰인다. 개혁하고 혁신하자는 소리를 들은 지 족히 수십 년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개혁하고 혁신할 대상이 그토록 많으니 대체 개혁은 언제 끝이 나고 혁신은 또 언제 끝나는 것인가.
개혁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을 이른다. 한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개혁(改革)은 가죽을 고치고 바꾼다는 뜻이다. 가죽을 고치고 바꾸는 일이 어쩌다 제도를 뜯어고치는 일이 됐는지 어원을 찾아보았다. 고대에 가죽은 곧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의 계급과 신분을 나타냈다. 그러니 그 가죽옷을 바꾸면 다른 계급, 다른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분을 바꾸듯 의식이나 가치관을 바꾸고 잘못된 버릇이나 낡은 사고방식을 바꾸어 조직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을 개혁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혁신은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한자로 혁신(革新)은 가죽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또한, 개혁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개혁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고, 혁신은 시스템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그러니 두 낱말은 어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바꾸어 써도 뜻이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새롭게 바꾼다는 면에서 의미가 같기 때문이다.
개혁을 혁명과 비교해 설명하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개혁은 급진적이거나 본질적인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 특정한 면의 점진적인 변화를 끌어내 고쳐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더 급진적인 사회 운동인 혁명과는 구별된다. 우리 사회는 전 분야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 개혁, 혁신을 주문받고 있다. 과거와 비교할 때 세상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고, 사람들의 의식도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바뀌었는데, 곳곳에서 개혁과 혁신을 주문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거의 매일 뉴스를 장식한 핵심어 중 하나가 ‘검찰개혁’이다. 검찰의 독점적 권력을 분산시켜 다원화함으로써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검찰이 아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검찰을 만들자는 것이 요체이다. 검찰도 조직의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 정부가 구상하는 바와는 각도가 달라 보인다. 검찰은 현 정부가 원하는 개혁은 혁신을 넘어 혁명 수준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이렇듯 양자 간 견해 차이가 뚜렷하다 보니 개혁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각자의 본분에 열중하며 생업에 종사하는 95% 이상의 국민은 검찰과 맞닥뜨릴 일이 없다. 90% 이상은 검찰은 고사하고 파출소에 갈 일도 없이 산다. 그러니 검찰개혁이 피부에 와닿지는 않을 만도 하지만, 대개의 국민은 검찰이 개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동안 검찰이 보여준 모습이 국민의 눈으로 바라볼 때 썩 정의롭지도 않았고,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지도 않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그만큼 권력이 독점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견제할 세력이 없으니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권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최고 권력기관으로 서슬 퍼렇던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과 보안대(기무사) 등이 무력화된 지 오래다. 지금은 오직 검찰만이 살아있는 권력이다. 그러니 그 힘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야당을 비롯한 일부 세력이 우려하는 대로 정권이 검찰 위에 군림하기 위해 개혁을 시도하려 한다면 이는 용납될 수 없다. 어떤 형태든 ‘대한민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개혁이라야 한다. 국민을 능가하는 어떤 권력도 인정할 수 없다. 국민보다 우선하는 권력이 없도록 하는 것이 모든 개혁의 최우선 조건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