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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 강을 건너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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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3.28 14:2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가지마오 가지를 마오 / 그 강을 건너지마오”
미스트롯2 결승전 1위 양지은 가수가 부른 ‘그 강을 건너지마오’ 노래의 일부다. 삶과 죽음의 경계인 그 강.

최근 대학들의 핵심 처장들과 주요 교수들은 죽을 지경이다. 제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보고서를 작성해야지, 디지털 공유대학 사업 신청도 해야지 숨돌릴 틈이 없다. 입학생을 제대로 충원하지 못한 대학들은 아직도 맨붕상태다. 미달된 어떤 대학에서는 13개 학과를 통폐합하려는 무자비한 구조개혁을 시도하는 대학도 있다. 이곳저곳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4월에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대학재정지원 특수목적사업인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 혁신공유대학’지원을 놓고 대학가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2021년도 예산 832억원, 3+3년 지원사업(1개 사업단에 평균 100억원)이다. 미래를 선도할 8대 신기술분야의 교육과정 개발을 위해 지원되는 사업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차세대반도체, 미래자동차, 바이오헬스, 실감미디어, 지능형로봇, 에너지신산업 등 핵심분야에서 6년 후 11만9597명의 인력이 부족하다. 이 사업을 통해 10만명의 인력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인문사회분야 교수들은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만 볼 따름이다.

주관대학 한 사업단에 4-7개 대학이 참여해서 총 48개 대학이 동참한다. 2차년도부터 확장대학이 참여한다. LINC+사업 등에 비해 지원금액은 크지 않지만 대학가에 미치는 파장이 클 거다. 대학 입학자원의 급감에 따라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하는” 게 아니라 “기회와 위기 앞에 대응하는 자세”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동안 대학재정지원사업에서 공유대학 형태로 지원되었던 경우는 LINC+사업에서 건국대학교 사례, 브릿지사업. 여성이공계지원사업(WE-UP사업)의 일부에서나 간간이 있어 왔다. 이번 사업처럼 본격적으로 공유대학 형태를 시도한 경우가 없었다. 각 대학들이 이 사업을 준비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걸 봤다. 주관대학으로 출전하려는 대학들은 분야별로 1개만 뽑는데 과연 승산이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다. 참여대학을 구성해야 하는데(수도권 40%, 비수도권 40%, 전문대 1개 이상으로 구성), 어떤 대학과 짝짓기를 해야 승산이 있을지 서로 치밀하게 계산하더라.

일류대학 일류학과는 이번에 주관대학으로 선정되는 대학이 될 거다. 참여대학 학과로 들어가는 대학은 입시 한파에서 고통을 적게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학의 서열이 중앙일보 대학평가, 아시아 및 세계 대학평가 기준과 같이 기존의 브랜드와 연구 경쟁력에 영향을 받아왔다. 앞으로는 최상위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입학 충원율, 재학생 충원율에 의해 주로 생존이 결정될 거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과 근성, 위기 앞에서의 변신 노력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기후변화, 인구변화, 보건의 위기, 기술의 급변이 발생하면 경제변화, 사회변화, 문화의 변화로 이어진다. 인구변화의 쓰나미가 대학가에 상륙했다. 코로나19라는 보건위기에 따른 비대면학습이 대학의 모습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학생들은 비대면학습에 적응했고, 그 유용성을 실감하고 있다. 현재는 원격강의 비율이 20%로 제한되어 있지만 학생들의 수요에 따라 40%까지 확대될 날이 멀지 않다.

산업화시대에서의 지식전달 시스템이 변화할 것이다. 2014년에 미네르바스쿨이 생겼다. 우리나라에도 강의실이나 도서관이 없더라도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교육이 가능한 ’미네르바’형 대학이 출현할 것이다. 교수들은 내가 하고 있는 수업이 과연 디지털 사회에 필요한 인재상 양성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온라인상에서 학생주도하에 능동적으로 토론하는 수업도 보편화될 것이다.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지적 소통을 디지털이 해결해줄 거다.

디지털 공유대학사업이 성과를 보이면 8개 핵심분야에 이어 다른 이공계 학문분야로 어느 정도야 확산이 되겠지만 인문사회분야로까지 정부 예산이 흘러 들어가지는 못할 거다. 각 학문분야별로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활로를 찾아야 한다. 과목별로, 단원별로 최고의 공동강의 동영상을 제작하여 대학끼리 공유하고, 각 담당교수가 토론을 유도하는 식의 공유대학형 수업은 지금 당장 시작해도 충분하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풀이 마르면 누우는 악어 떼가 득실거리는 강을 건너야 한다. 먼저 강에 뛰어드는 첫 번째 누우는 잘 죽지 않는다. 나중에 뛰어든 누우 중에서 약한 개체가 죽는다.
대학이, 교수의 신세가 이 지경까지 왔다는 게 원통하고 답답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먼저 그 강을 건너자.
살아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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