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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교육적폐 LH사태 못지않다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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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4.14 16:55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내부담합으로 부패의 고리를 형성한 LH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가 문재인 정권의 멱통을 움켜쥐며 국민들의 가슴에 절망의 불꽃을 지폈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정부 산하기관 구성원의 부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촛불로 당선된 민주정권에서 이러한 사태가 불거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문제는 LH의 부패고리 같은 비리의 사슬이 오랫동안 정부의 주요 기관에 얽혀서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사법부를 비롯한 정부의 모든 관료들이 비리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교육계의 비리 구조도 들여다볼수록 해결난망이다.

교육계의 비리는 크게 특정 세력의 권력독점과 대학의 부패로 볼 수 있지만, 그중 LH 사태와 비슷한 부패 고리는 교육 권력의 세습적 독과점체제에 있다. 교육계의 주요한 자리를 독점하는 세습체제는 다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첫째, 교장권력의 독과점 체제다. 우리나라에서 ‘차기 교장은 대체로 현직 교장만이 지명’할 수 있다. 평교사가 교감으로 승진하거나 장학사가 되려면 당해 학교 교장의 지명이 있어야 한다. 교장임용에 있어서 유일한 결정권자는 현직 교장이다. 대통령이나 교육부 장관, 교육감도 여기에 관여할 수 없다. 평교사가 교감 연수자로 지명받아승진하려면 평균 25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지만 교육 전문직은 교직 경력 10년 내외면 응시할 수 있고, 합격이 되면 대략 7년 안에 교감과 교장 자격증을 모두 취득할 수 있기에 교장승진의 엘리베이터로 불린다.

상당수의 교사들이 20대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하기 보다는 수십년 동안 승진점수를 따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점수가 다 채워진 뒤에도 동점을 받은 동료들 중에서 오직 한명 교감 연수자로 지명받기 위해 교장만을 쳐다보게 된다. 똑똑하다는 친구들은 일찌감치 장학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노량진 임용고시 학원 특별반으로 달려 가지만 이들 역시 장학사 시험을 보려면 교장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때문에 교육계는 마피아를 방불케 하는 승진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부부 교장과 부부 장학사, 부부 부장 교사들이 참 많이 포진해있다. 가족같은 승진파 교사그룹이 학교의 교육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교장 승진구조는 한국의 교육을 규정하는 정체성이다. 한국에서 교감과 교장의 자격을 보직으로 운용하지 않고 일제(日帝)의 잔재에 따라 별도의 자격증제를 두어 상호 간 칸막이를 한 것은 상당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교감 직위는 원래 없다가 1961년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이후 신설되었다. 부장 교사도 역시 본래 없다가 노태우 군사정권 때 교사의 승진 욕구를 위해 만들어졌다. 교사들의 승진 경쟁과 계급 간 특혜로 인해 교원이 갖는 고유의 법률적 직무인 ‘가르치는 일’마저 흔들리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부패구조가 진보정권에서조차 존치되는 한 LH 사태 같은 승진의 병폐는 지속되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둘째, 행정고시 출신 교육 관료들의 교육 권력 독과점 체제다. 1000명 규모의 교육부 직원 중 십분의 일을 차지하는 고시 출신 관료들은 교육부의 과장급 이상 고위직을 싹쓸이 하다시피 독점하면서 교육정책을 행정우위의 시스템으로 고착화시켰다.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행정력이 많이 투입되는 선진국형 학점제보다는 상명하달식의 행정에 용이한 단위제 교육과정과 승진점수제의 교장 자격증 체제를 선호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있고, 교육청의 부교육감과 고위직에 당연직으로 파견돼 지방교육자치에 개입하고 있다.

또 퇴직 후 일자리로 대학의 총장과 부총장, 고위직 직원에 초빙되어 전관예우를 누리고 심지어 전직 교육부 장·차관들은 창피한 줄도 모른 채 산하기관의 이사장 등으로 부임해 전문성을 크게 훼손하는 일에 눈깜박하지 않는다.

소수의 전·현직 고시 출신 교육 관료와 전직 장·차관들이 교육계의 모든 최고 권력을 자기들끼리 세습하기에 바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대통령들의 비호와 내치 개혁의 부재가 낳은 비극이다. LH 비리는 이러한 교육 마피아들의 부패 고리에 비하면 약소하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교총체제가 갖는 반(半)영속적인 교육권력 독점 시스템이다. 교총은 교육 전문직 집단(이들은 교감과 교장으로 학교에 복귀하면 상당수가 교총에 가입하는 주요 기반 세력이다), 교장 및 교감단, 간부 교사들을 주요세력으로 유지하면서 정권이 바뀌든 말든 천년만년 교육권력을 독점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교육감이 전교조나 진보 인사 출신이라 할지라도 실질적인 권력은 교총 성향의 교육 전문직과 교장단이 갖고 있는 셈이다.

교총은 노조가 아니면서도 거의 노조와 동등한 협의권을 부여하는 특혜를 주고 있어다른 교육단체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결국 교총의 권력독과점은 국회와 정부의 특혜로 이루어진 사슬이다. 교총이 교직원과 학생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긍정적인 활동을 펼치기도 하지만 현장 교육개혁의 의제인 교장 보직제나 여러 개혁과제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도 교육권력 독과점체제를 유지하려는 속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진보진영의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 국가교육회의 체제다. 이들은 민주당 정권과 민주화 덕분에 탄생한 세력이지만 교육개혁을 이루지 못해 현장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학생 인권과 학교 자치, 교육자치의 확대를 가져온 공로가 있지만 공보다 과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 교장 보직제와 입시개선, 특목고 폐지와 교육관료 개혁, 중등 학점제 도입에 실패했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유은혜 장관이 제시한 고교학점제는 선진국형 중등학점제가 아닌 고교 선택과목의 확대에 불과한 기형이다. 결국 결정적인 성과가 없으니 그들은 교육계를 개혁하지 않고 통치만 했다는 비평에서 빗겨 갈 수도 없게 되었다. 촛불로 탄생한 민주 정부와 단군 이래 최대의 교육계 이변으로 꼽히는 진보교육감 체제에서 단 하나의 국민교육제도조차 수립하지 못했고, 교육개혁은 꿈조차 꾸지도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부동산 투기의 분노로 불거진 LH부패처럼 어느 날 문득 교육 비리가 크게 불거지는 날이 온다면 위에 거명한 세력들이 교육계 오적(五賊)으로 국민의 심판대에 서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봄꽃은 피고 지고 세월은 무상한데 교육개혁을 기다리는 일은 난망(難望)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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