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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식당과 호출벨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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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4.18 14: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얼마 전 식당을 경영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얼마 전까지 식당 내에 설치했던 호출벨을 모두 없앴다고 말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손님을 위한 서비스로 설치한 호출벨을 왜 없애버렸을까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친구가 호출벨을 걷어낸 사연을 듣고 나의 부족한 인권의식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평소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고, 생활 속에서 인권감수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이야기는 이렇다. 대학생인 딸이 어학연수를 위해 외국에 나가 1년 남짓 생활하고 돌아와서는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 설치된 호출벨을 없앨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 딸은 “아무리 손님이라 해도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벨을 눌러 사람을 부르는 행위는 대단히 심각한 인권 침해로 봐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딸은 “식당 테이블마다 손님이 원하면 종업원을 부를 수 있게 호출벨을 설치한 것은 한국뿐”이라며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 한국인은 늘 손님의 처지에서 생각한다. 그러니 손님이 필요한 서비스를 빨리 받기 위해 테이블에 설치한 호출벨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호출벨을 이용해 사람을 부르는 것은 다분히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다. 벨 소리를 듣고 테이블로 당장 달려가야 하는 종업원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누군가에게 어떤 서비스를 요청할 때 정중히 예의를 갖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손님이고 상대가 종업원이라 해도 상황은 같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닌 사람을 자신이 필요해서 부르는데 정중함이 없이 호출벨을 누르는 것은 분명 인격침해고, 나아가 인권침해라 할 수 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정말 부끄럽다. 내가 돈을 지급하는 주체로 식당에 이익을 제공해 주인과 종업원이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들이 내게 따듯한 한 끼 식사를 제공해 내가 에너지를 채우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실상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미 한국 사회에서 일반화된 식당의 호출벨을 이용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아줌마” “이모” “여기요” 등의 격에 맞지 않는 호칭을 큰 소리로 불러 대면, 이 또한 인격 살인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호출한다면 어쩌면 더 심각한 인권침해를 가할 수 있다.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도 가정에 돌아가면 존경받는 부모고, 사랑받는 자식이다. 손님이란 이유로 그들을 비인격적으로 호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정답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조급함이 몸에 익은 한국인으로서는 빨리 호출하고 빨리 응답하지 않으면 답답함에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매사 조급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주는 방법이 무얼까 찾아보면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여유를 갖고 기다렸다가 서비스 요원이 지나갈 때 눈빛으로 부르거나 낮은 목소리로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다. 급한 마음만 덜어내면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처지만 생각할 게 아니라 상대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한결 품격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식당 호출벨은 이미 일반화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이것이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고 인격을 훼손하는 일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대한민국 땅에서 하나씩 식당 호출벨을 걷어내야 한다.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서서히 적응해 나가면 된다. 조급함이 문제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품격있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 진정 사람이 사람을 배려하는 사회가 된다. 그게 진정한 동방예의지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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