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두 사람이 그런 농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친분관계가 어느 정도 깊었기 때문이며, 두 사람의 내적인 성숙도가 충분히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로 인해서 나온 말이 ‘뭐 눈에는 뭐밖에 안 보인다.’입니다.
만약에 눈앞에 하얀 물체가 있다고 했을 때 파란색의 안경을 쓰고 보면 그 물건이 어떤 색으로 보일까요? 물론 파란색으로 보이지요? 그럼, 노란색의 안경은 어떤가요? 노란색으로 보입니다. 다른 색의 안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물건이 흰색이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흰색을 말한 것은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고 어떤 색을 띠고 있더라도 안경의 색에 가까운 색으로 보입니다. 색이 있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자신에게 보이는 색하고 보이는 물체의 색은 다르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색의 안경을 썼는가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져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속눈썹에 먼지가 하나 얹어져 있을 때 세상이 똑바로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보이는 것처럼 변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눈에 뭐가 끼었을 뿐입니다. 먼지 하나뿐인데도 달라 보이는데 먼지가 많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심 봉사 만큼은 아니어도 제대로 세상을 보기 힘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누군가를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 사람이 제대로 보입니까? 그 선입견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선입견이라는 먼지 때문에 진실을 모르게 됩니다. 이런 예를 들어 봤을 때 ‘뭐 눈에는 뭐밖에 안 보인다.’라는 말은 ‘뭐 눈에는 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로 바꾸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누가 자신 있게 세상의 진실을 바로 본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누구나 세상을 제대로 보고 듣고 느낀다고 생각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신이 가진 관념이나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진실을 안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격이 세상의 유행하는 어떤 틀에 갇혀 있지 않고 보편타당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없다면 사실상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과 세상의 실제의 모습은 다릅니다.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에는 이러한 내용을 이해한 후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두 사람이 그들의 관념이나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가졌더라면 이성계가 마지막에 웃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멋진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색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마음의 잣대가 세상을 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그 잣대로 자신을 재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고민해보지 않으면 평생 자신이 설계한 세상에 갇혀 살다가 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