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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표현의 자유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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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5.03 14:51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춘했다고 썼단다.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에 굵은 소금을 뿌렸다. 왜곡된 글을 써서 영구히 남기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아직도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는 할머니들이 버젓이 살아 계시는데 말이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인데 자기가 뭘 안다고 떠벌리는 걸까. 혹시 일본의 극우단체의 도움을 받은 걸까. 멍석말이라도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일본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램지어 대한 강한 비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저명한 일본학자는 램지어가 주장하는 ‘위안부 계약’에 대해서는 “계약이 있는 위안부는 일본인 여성 대부분과 일부 조선인 여성뿐이었다”며 “계약 없이 군과 업자에 의해 약취(略取·폭행이나 협박 등으로 타인을 지배하는 행위) 혹은 유괴로 위안소에 구속된 조선인, 중국인, 대만인,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 네덜란드인 등 많은 여성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램지어가 위안부 계약에 대해 논하면서도 “한 점의 계약서도 제시,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부 제도라는 '성노예 제도'를 만들고 유지했다는 점을 램지어의 논문은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지만 잘못된 진실을 제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잘못된 논문이라고 학자들마다 들고 일어나는데 일본 극우단체들은 잘못을 지적하는 교수들에게 협박성 메일을 보내는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니 도대체 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는 걸까. 헛소리로 일관하는 일본 사람 자신들이 그렇게 당했다면 그때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기만 할까.

우리나라 학자 몇 명도 램지어의 말에 동조했다고 한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은 맞을까. 수많은 고통을 받으며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에게 어떤 마음을 갖는지 궁금해진다.

몇 년 전 화나는 마음을 글로 적은 적이 있다. 사실 그대로 적긴 했지만, 글을 본 상대는 기분이 많이 상했다며 안 좋은 소리를 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 뒤로 나를 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사실과 내 마음을 적은 것이라 떳떳하다 하더라도 남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은 정말 어이없는 행동으로 내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상황을 지켜본 사람이 나보다 더 화를 내며 씩씩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려니 했는데 속이 상했는지 한동안 그 사람을 안 보는 것으로 상처 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화가 풀리지 않자 글을 쓰기로 했다. 내 감정을 빠짐없이 토로하는 글이 되었다.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글을 보태고 또 보탰다. 글을 활자화하려다가 지난번 보낸 글로 상처 입었다는 사람이 생각이 나서 혼자 쓰고 또 쓰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내 글이지만 누군가에게 상처 주기는 싫었다. 시간이 흐르자 마음을 비우게 되면서 편안해졌다.

글이나 말이 아무리 자유롭다고 해도 남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혼자만이 간직해야 할 글이란 생각이다. 물론 논객들이 하는 토론은 다르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표현의 자유를 자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화나는 마음을 글로 쓰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되었던 것 같다. 마음이 평정을 찾았을 때 글을 삭제함으로 남은 찌꺼기를 다 날려버릴 수 있었다.

글을 배우고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곧바로 말을 할 때보다 글을 쓸 때 걸러지고 진정되기도 한다. 굴곡진 삶을 산 사람들이라면 글로써 치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이라면 남에게도 폐가 되지 않겠지만 타인이 글의 주인공이 될 때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온갖 말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세상을 이끌어 가는 지성인이라는 사람들도 쓸데없는 말로 국민을 현혹시킨다. 국회에서도 출처가 불분명하고 정확하지 않은 말들로 공방을 일삼는다. 소위 지도자라는 자리에 앉아서 누구를 위한 말을 하는지 의심스럽다. 이해도 동조도 되지 않은 말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왜 그러는 걸까. 표현의 자유가 아무 말이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그로 인해 불편해하는 국민을 아랑곳하지 않는 걸까. 요즘엔 가짜 뉴스도 참 많은 것 같다. 무엇 때문에 그런 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퍼뜨리는 걸까.

요즘엔 언론에서도 강력한 말이 난무한다.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거침없다. 속이 시원할 때도 있지만 가슴이 조마조마한 때도 있다. 세 번 생각하고 말하라고 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부터 생각을 많이 하고 말을 적게 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나는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가려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자유를 누리려면 책임이 따라야 한다. 자유를 왜곡하지 않는 좋은 말과 글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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