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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아시타비(我是他非)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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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5.09 12: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뜻의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모든 사람이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자성어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지위가 높아질수록 누구나 가지는 어정쩡한 이 사회의 가치관인 듯하다.

2020년 작년에 대학교수들은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아시타비’를 선정하였는데 개인적으로 바라보면 교수사회나 정치권이나 똑같다. 그 이유는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서로를 상스럽게 죽으라고 비난하고 헐뜯는 소모적 싸움이 판치는 대표적 이기적 집단들이기 때문이다.

늘 비판만 무성할 뿐 협업해서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국사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부터 당파 싸움 땜시 남쪽으로는 왜구들에게, 북쪽으로는 오랑캐들에게 침략당하였는데 그놈들의 자손들은 이제는 맨날 여당이니 야당이니 편 갈라서 싸움질이니…”

인생을 살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하지만, 나에게는 관대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 부분은 분명 오류이다. 지혜가 필요하다. 상황을 편파적으로만 보려 하지 않고, 중립적인 마음으로 특정 대상이나 상황을 보고자 노력하는 진실된 여유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필요한 시대이다.

육체는 음식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우리들의 영혼은 꿈을 먹어야 살 수 있다. ‘100세 인생’을 쓴 린다 그래튼 등은 “100세를 사는 시대가 왔고 제대로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면 장수는 저주가 아닌 선물이다. 그것은 기회로 가득하고, 시간이라는 선물이 있는 인생이다”라고 했다. 인생의 짧은 순례길을 걷노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세상에 파묻혀 땅만 보고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의 진실과 처절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가슴 고이 간직한 꿈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름에서 유래한 심리학 용어 ‘피그말리온(Pygmalion) 효과’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의 반대어이다.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그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로마 신화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여인상에 생명을 주어 서로 사랑하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즉, 피그말리온(Pygmalion) 효과란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표현하는 뜻이다. 교육 심리학에서는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기대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로 교사의 관심이 학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이 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한편, 유사한 심리적 효과로 갈라테아 효과(Galatea effect)와 골름 효과(Golem effect)도 있다. 갈라테아 효과는 피그말리온 효과의 비슷한 부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리더가 부하에 기대를 가질 때가 아니라 부하가 자신들에 대한 높아진 기대를 갖게 될 때, 그러한 높은 기대를 달성하고자 노력하게 되고, 결과적 성과도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리더의 높은 기대가 높아진 부하의 직무성과에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부하들이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그러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골름 효과는 피그말리온 효과의 부정적 방향에 대한 것으로 리더가 부하에 대해 낮은 기대를 가지고, 부하가 자신에 대한 낮은 기대를 현실화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귀하다. 그러므로 모두가 소중하게 여기면 한없이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지만 모두가 하찮게 여긴다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대접받을 것이다.

속담에 ‘견월망지 (見月忘指)’라는 말이 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뜻으로 본질을 꿰뚫고 실체를 보라는 의미인데 나, 역시 달을 보기보다는 어쩌면 손가락 끝만 바라보고 사는 삶에 익숙해지지 않았나 숙연해지는 시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객관적 사고가 많이 필요한 세상인 듯하다. 가끔 아파트 경로당에 가보면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화투를 치고 계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때 옆에서 훈수를 뜨는 할머니도 늘 계신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본인이 참여하였을 때는 보이지 않는 수가 옆에서 훈수를 두는 입장이 되면 보이게 되므로 훈수 뜨는 역할에 나름 매력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이치도 마찬가지이다. 강박관념이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볼 수 있는 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것. 따라서 세상을 살다 보면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얽매여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객관적인 시점으로 훈수를 두듯이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로맨스이면 상대방도 로맨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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