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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오월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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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5.10 14:2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음성예총 회장
음성예총 회장

5월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단어에 맞게 푸르른 신록이다. 이맘때가 되면 피천득 님의 5월이라는 시를 읊조린다. 오월에 대한 시인의 느낌이 전문에 드러나 있다. 서두에는 찬물로 갓 세수한 청년의 얼굴로 표현했고,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라고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른 오월 속에 있으니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라면서 탄식 비슷하게 노래했다.

출근길에 보이는 모란이 아름답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지만, 친정집 화단에 여전히 곱게 피어 있을 모란이 오버랩 되어 쓸쓸하다. 많은 사람이 오월을 예찬하지만, 오월이 되면 어느 때는 쓸쓸함을 지나서 슬픈 정서가 밀려오기도 했다. 친정집 주변에 있던 여러 가지 과일나무꽃이 지면 이어서 화단에는 모란꽃이 가득 피곤했던 5월의 친정집 신록이 떠오르는 탓이다.

5월이면 꿈도 자주 꾼다. 뒷산에 올라 숨이 차도록 뛰어다니는 나를 만나고는 한다. 깨고 나면 어쩐지 허망했다. 평소 잘 꾸지도 않는데 나이를 먹어도 오월에 꾸는 꿈은 거르지 않는다. 남모를 향수가 오월을 더욱 푸르게 한다.

어버이날이라고 큰아이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앨범을 꺼내 보면서 사진 속 상황을 내게 묻고 그 사진들을 핸드폰으로 다시 담아 작은아이에게로 보내고 있었다. 그 사진 속에는 젊디젊은 내가 아이들 운동회 날 긴 머리를 날리며 무용을 하고 있었고, 훤칠한 모습의 남편도 모래주머니를 들고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사진 속의 젊고 환한 미소의 남편과 내가 마치 딴 사람 같다.

큰아이는 젊은 시절 엄마와 자신이 너무 닮아 구별 못 하겠다고, 옷 입은 스타일도 비슷하다고 연신 떠들었다.

사진들 속에 친정엄마도 계셨다. 아이들을 안고 찍은 사진이다. 돌아가신 지 오래되어 가끔 기일을 전후에 추억하지만 바쁘다 보니 친정 부모님 생각은 갈수록 희미해져 갔다. 사진을 마주하니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흠칫 놀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친정이 멀다 보니 어버이날이라고 찾아가는 일도 별반 없었다. 선물을 보내거나 전화로 대신하고는 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애들 어릴 때는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다. 어린이날에 이어서 양가 부모님까지 챙기면 오월은 늘 팍팍하게 지나갔다.

거실에 큰딸이 사 온 카네이션꽃이 웃고 있다. 나도 어느새 부모님 나이가 되어서 효도의 꽃을 받는 나이가 되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많은 것을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을 추스를 새도 없이 딸에게 선물을 받고 있다.

생각이 많다. 사랑은 대물림인 것 같은데 효도는 후회로 얼룩진다. 어머님이 내게 사랑을 물려 주신 것처럼 나 또한 사랑을 물려주면서 딸을 키웠다. 부족하지만 딸에게는 내게 있는 모든 사랑을 퍼주었다. 어머니 역시 어머님의 어머니에게는 소홀했어도 내게는 넘치는 사랑을 물려주셨다. 어차피 내리사랑이고 치사랑은 없었으니까.

5월은 사랑과 감사의 달이다. 카카오톡으로 보내주는 글들도 감동적이다.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게 된 유래와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에 관한 글,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뒤늦게 전하는 사랑의 글 등 지금까지 다양한 감사와 사랑의 글을 받았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못다 한 사랑이 뭉클하다. 딸들에게도 부모님께도 좀 더 사랑을 나누지 못해 아쉽다. 아무리 주어도 모자라는 아쉬움이 있다.

코로나 속에서 맞는 두 번째 봄이다. 내년에는 마스크를 벗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금방 세수한 청년 같은 오월 속에서 마음껏 즐기고 싶다. 유리창을 여니 금방 신록이 더욱 짙어진 것 같다. 유월은 녹음으로 우거질 것이고 칠월에는 정열의 태양이 우리에게 또 다른 날들을 살게 할 것이다. 앞으로의 시간들이 시련보다는 희망찬 날들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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