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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오월, 마음을 담다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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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5.11 14:2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지난 주말에는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집 친정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집 근처 화원에 들러 붉은색과 분홍색이 잘 어우러진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사고, 용돈도 준비했다. 하늘엔 황사와 미세먼지로 가득해 먼 산의 초록이 온통 회색빛인데 그래도 오늘 찾아뵙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길을 나섰다.

마치 풍경화를 걸어놓은 듯 눈을 돌리는 곳마다 그림이 되는 오월이었다. 진한 미세먼지로 온통 뿌연 시야 속에서도 푸른빛의 오월은 사람들을 밖으로 밖으로 내몰고 있었다. 분홍빛이던 봄꽃들이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오종종하니 열매를 맺듯 하얀 아카시아꽃을 보려는 듯 불편한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마스크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길을 걷는 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수이니 자식들이 분산해서 저녁에는 오빠네가, 우리 내외는 점심을 함께하기로 해 전날 예약해 둔 식당에서 만났다. 꽤 이름있다는 한정식집에서 가장 비싼 코스요리를 대접하고 집으로 모셔다드리는 길에 용돈도 드렸다. 나는 자식으로서 해야 할 매년 어버이날의 행사를 올해도 이렇게 막힘없이 잘 해냈으며 그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두 다리를 뻗었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부모님을 집 앞에 내려드리고 돌아 나오는 동안 대문 앞에 당신의 그림자가 아주 오래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자세로 나는 한가로이 남은 시간을 소일했다.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면서 그렇게 오후를 채우는데 학창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창밖은 더없이 푸른 오월인데 갑자기 우울해서 전화를 걸었단다. 이유인즉슨 집 앞 꽃가게에 손님들이 카네이션을 사느라 분주하건만 자신은 이제 더는 꽃을 살 일이 없다는 생각에 맥이 풀려 지금껏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가 잠깐 파르르 떨리는 듯 울먹이고 있었다.

지난 이맘때 친구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우울감에 시달렸다. 집안의 막내딸로서 엄마와 가장 긴 시간을 함께했고, 그래서 정도 깊었다던 친구는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에 엄마가 많이 생각났을 법도 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를 모시고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었다. 아주 사소한 시장 나들이부터 멀리 해외여행까지 두 모녀가 쌓은 추억은 가히 백과사전 몇 권을 쌓아 올릴 두께였을 것이다.

이젠 오롯이 이 세상에서 고아가 되었다며 씁쓸하게 웃다가 울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친구를 보며 잠시 생각이 깊어졌다. 가슴에 꽃송이 하나 덜렁 달아드리고 얼마의 용돈을 드리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노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내달린 오늘, 나는 무엇을 놓쳤는가.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어린 시절 어린이날이면 아버지께서는 그날만큼은 작은 심부름도 시키지 않고 다른 날보다 특별히 나를 공주로 살게 해 주셨다. 엄마 역시 일기장에 한 줄 남길만한 날로 하루를 빛나게 해 주셨다. 오롯이 나의 날이었다.

해마다 돌아오는 오월의 여러 기념일. 고급 식당에서 한 끼 맛난 음식 대접하고 용돈을 드리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노라 생각하는 것은 나날이 늙어가는 부모님을 쓸쓸하게 하는 일이다.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흐르는 물처럼 돌고 돌아 자연스레 맞이하는 날들에 그저 형식이 아닌 진정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

하늘이 내려준다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인데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부모님과 잠깐이라도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걸음에 보폭을 맞춰 걷는 마음을 보여야 한다. 무릇 부모와 자식은 그렇게 서로의 울타리로 평생을 가는 존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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