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청와대 게시판의 냉탕과 온탕
[아침을 열며] 청와대 게시판의 냉탕과 온탕
  • 충청신문 dailycc@dailycc.net
  • 승인 2021.05.1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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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어려서 형과 동생이 싸우면 부모는 형을 많이 나무랐다. “네가 형이니까 이해하고 동생에게 양보하고 보살펴 주어야지 동생하고 똑같이 싸우느냐?” 어려서 어느 집에서든 한 번은 들어봤을 말이다. 비슷한 상황을 가정해 건달과 지식인이 공모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가정하면 세상은 지식인에게 더 많은 질타를 쏟아냈다. “배웠다는 자가 저 모양이냐?” 또는 “알 만한 사람이 그런 짓을 하느냐?”라며 지식인에게 더 과중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범죄에 대해 죗값을 물을 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계획적인지, 우발적인지 여부와 상습적인지, 단발성인지 여부다. 계획된 범죄는 우발적 범죄보다 더 큰 죗값을 치르게 된다. 또한, 상습적인 범죄는 단발성 범죄보다 몇 곱절 무거운 죗값을 치러야 한다. 이는 굳이 법을 전공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법 감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계획범인지, 우발범인지와 상습범인지 단순범인지는 형량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누군가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얼마의 기간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동의했다는 내용이 하루가 멀다고 보도된다. 이와는 상반되게 얼마 전에는 영어(囹圄) 생활 중인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삼성그룹 재벌 총수를 사면해달라는 청원도 게시돼 삽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동의가 이어졌다. 양자를 비교해보면 국민의 일반적인 법 감정과 다른 법 감정이 작용하고 있음을 느낀다.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훨씬 더 관대한 법 집행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특권 속에 생활하는 사회지도층의 범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래서 사회지도층이 범죄를 저지르면 더 가혹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대해서는 사면을 청원하고, 사회 하부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해 달라는 청원이 빗발친다. 다수의 국민이 사면을 청원한 이들이 저지른 범죄는 계획적이고, 상습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니 관행과 상습을 벗어난 독특한 사면 청원을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 신문고인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의 글을 올리거나 동의를 표시하는 이들이 드러내는 정서를 살펴보면 아무래도 흉악범인지 아닌지에 집중하는 것 같다. 다수의 국민은 권력형 범죄나 경제범죄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대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반면 파렴치범이나 흉악범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력형 범죄나 경제범죄는 당장 자신이 피해당사자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듯 하다.

물론 흉악범이나 파렴치범이 저지르는 범죄는 섬뜩하기 짝이 없고 일말의 인정조차 잃게 한다. 그렇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사회지도층의 범죄가 국가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국민 앞에 모범을 보여야 할 이들이 계획적이고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질렀으니 죗값을 단단히 치르는 게 맞다. 하지만 국민 다수의 법 감정은 이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왜 사회지도층에 대해 그리도 관대할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흉악범을 감싸고 돌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흉악범이라고 단호하게 형벌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서 우리 사회가 그러한 흉악한 범죄를 막기 위해 얼마나 예방적 노력을 해왔는지 반성할 필요는 있다.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논리에 길든 우리 사회는 사회의 패자들에게 따스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낙오자라는 따가운 시선만 안길 뿐이다. 불공평한 세상에 대해 그들이 가질 분노와 패배의식을 치유해줄 사회적 노력은 없었다. 사회적 패악을 차단할 정서교육도 우리는 늘 뒷전이었다.

흉악범죄에 대한 예방적 노력은 없이 늘 발생한 범죄에 대해 단호한 처벌만 강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사회지도층에 대해서는 늘 온정적이다. 온정을 베풀고자 하는 이유는 국민화합 또는 국가경제 등으로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러니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비아냥이 뒤따른다. 법은 무엇보다 공평해야 하고, 집행은 일관돼야 한다. 과연 우리 다수의 국민이 가진 법 감정은 공정한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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