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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80년 광주, 그리고 미얀마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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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5.20 10:38
  • 기자명 By. 충청신문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누군가 ‘너의 삶이 달라진 하나의 계기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80년 5월 광주’라고 답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지날 무렵 선생의 꿈을 갖고 들어간 사범대학은 한마디로 놀기 좋은 곳이었다. 통제받지 않는 생활, 눈치 보지 않는 어른놀이는 장밋빛 대학생활을 꿈꾸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거기에 학보사 기자라는 타이틀은 나름 특권이 돼 주었다. 그런 캠퍼스의 낭만은 광주의 참상을 알기 전, 딱 거기까지였다.

어느 날 선배가 읽어보라며 준 책, 그것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였다. 그 책은 5·18 민주화운동을 최초로 공개한 기록물이었다. 당시 ‘광주사태’를 일부 폭도들의 무장난동 정도로 알고 있던 내게 큰 충격을 안겨준 바로 그 책이다. 왜 광주에서 항쟁이 일어났는지, 피와 눈물의 5일간과 그들이 무장투쟁을 해야 했던 절박감, 최후의 항전과 끝나지 않는 투쟁 이야기를 읽으며 그날 밤 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왜곡된 채 의혹에 싸여있던 광주항쟁의 실상을 알고 난 후, 민주에 대한 소명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의식의 전환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숙명처럼 주어졌다. 각성한 민중의 힘은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쟁취, 민주화를 향한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80년 5월 광주항쟁이 민주화라는 시대적 사명을 일깨운 위대한 역사의 단초였음을 부인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비롯한 완전한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폄훼와 왜곡, 허위와 날조가 여전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올해는 5·18민주화운동 41주기이다. 내년 대선을 앞둬서인지 정치권을 중심으로 추모분위기가 남다르다. 그동안 주기적으로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해 오던 야당이 당 차원에서 기념식에 참석하고, 추모 성명을 통해 ‘통합과 화합의 정신’과 ‘역사적 책임’을 다짐했다. 일부 의원은 보수 정당 의원으로 최초로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초청으로 ‘5·18 민주항쟁 추모제’까지 참석, ‘5·18정신을 헌법에 담자’고 까지 언급할 정도로 진일보한 면모를 보였다. 정치적 계산이 다소 깔려 있더라도 바람직한 현상임은 틀림없다. 광주항쟁에 대한 평가는 이념에 따라 달라질 수도, 달라져서도 안 되는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이기에 그렇다.

안타깝지만 이들에게 진정성을 느끼지 못함은 비단 과거의 언행 탓만은 아니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 당은 불과 몇 달 전 국회에서 ‘5·18 왜곡처벌법’에 대해 반대하거나 기권했다.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5·18광주민주묘역 앞에서 당의 과오에 대해 사죄하고 정강정책에 5·18정신 반영 운운했지만, 정작 입법 과정에서는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해주었다. 최근에도 김영환 전 최고위원이 경기도의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지원책’에 대해 ‘광주 모욕’이라며 비난했다. 이재명 지사는 "겉으로는 5·18을 인정한다면서도 5·18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이를 ‘양두구육 형태’라고 지적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뜻밖의 행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대권주자의 한 축으로 부상한 그는 ‘5·18은 자유 민주주의 헌법 정신’이라며 “5·18을 과거로 가두지 말고 현재, 미래의 정신으로 격상시키자”며 정치적 메시지를 냈다. 이에 대해 임은정 검사는 “5·18때 사표를 던진 검사가 있느냐”라고 반문하며 ‘변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검찰’이라고 힐난했다. 김남국 국회의원 또한 "지난해 12월 검찰은 수십 년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왜곡하고 폄훼한 지만원 씨를 무혐의 처분했다"며 5·18 정신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런 논란은 80년 광주가 아직도 미완의 역사임을 입증하는 반증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소모품으로 활용당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올 2월 미얀마에서도 군부쿠데타가 발생했다. 100여일이 지난 지금 최소 8백여 명 사망, 4천여 명의 체포 소식이 들린다. 민주를 요구하며 목숨 걸고 저항하는 국민들에게 군부는 ‘테러’라며 유혈 진압하고 있다. 쿠데타세력은 40년 전 광주처럼 국민을 지켜야할 무기로 국민의 목숨을 빼앗고 있다. 역사적 아픔을 먼저 겪은 광주 시민들이 성금으로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국민들 또한 미얀마의 평화를 바라면서 세손가락을 들어 ‘세이브 미얀마’에 동참하고 있다. 지금 진행형인 미얀마를 보면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민주화의 역사에도 80년 광주가 있었음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쓰러져간 그들이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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