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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커피와 카피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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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5.30 12:2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10년전에 아리조나 주립대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열다섯명의 교수들이 공공기관을 시찰하러 버스로 이동했다. 시골길을 지나다 중국집에 들렀다. 식사 후 ‘커피’주문을 했다. 한참 지났는데도 커피가 나오지 않는다. 독촉했더니 영수증을 15매나 복사해서 가져왔다. 이게 뭐지?? 이거 말고, 다시 커피를 달라고 했다. 또다시 영수증 카피. 커피(coffee)와 카피(copy) 발음을 헷갈린 중국집 종업원과 콩글리시에 머무른 한국 교수들 간의 해프닝이었다. 미국 박사 출신 교수도 여럿 있었는데, 영어도 오래되면 도로 토종이 되는가 보다.

입시에서 날벼락을 맞은 지방대학들이 미달 방지 대책에 정신이 없다, 입시 시장이 급변하면서 새로운 전문가층이 생기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입학처장은 처·단장 간에 서열도 뒤쪽이었다. 입시처장은 어련히 교수가 맡는다고 생각해왔다. 교수가 아닌 입시전문가들이 입시처장으로 스카웃되고 있다. 다른 대학의 입시 전문가를 빼가는 경우도 있다. 22년째 입학팀장만 하는 대학도 있다. 입시 전문가의 전성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고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분을 입학사정관으로 모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입학사정관이 대학과 고교 사이에서 입학생 유치전에 투입된다. 총장이 입시 현장을 진두지휘한다. 대학의 생존을 결정하는 입시 전선의 현 주소다.

지난번 입시에서 의외로 고전한 곳이 광역중심도시 소재 대형사립대학이다. 대학은 브랜드를 형성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리는 영역이다. 괜찮을 거라고 자타가 공인했던 이들 대학들이 박살이 났다. 코로나19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한 소형 지방사립대학들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규모가 큰 조직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처하는 속도가 느리다. 이번 입시에서는 다른 변화가 생길 거다. 충격을 받은 대형 지방사립대들이 독을 품고 달려들 거다. 규모가 작은 지방사립대와 전문대의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본다. 위험이 돌고 돈다.

위험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된 지역은 대학이 많이 소재한 광역중심도시다.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전주시권 대학들의 경쟁이 여전히 치열할 거다. 고교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긴 하지만 그래도 광역도시의 중심권 대학에 남아있으려는 학생층이 상당히 있다. 권역 내에서 물고 물리는 게임이 진행된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대학이 제주대학교다. 제주도에는 인구 규모상 거점국립대 하나, 전문대 한 대학이 적정규모다. 제주엔 일반대 2개, 전문대 2개가 있다. 5년 이내에 생사가 판가름 날 거다. 살아남는 대학은 타 권역에 비해 상대적인 여유로움을 즐길(?) 거다. 권역 내 생존게임이 진행된다.

전에는 교육부의 대학특성화지원사업(CK사업) 등으로 특성화를 유도했다. 이젠 대학들이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특성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10년 이전부터 특성화를 시도한 대표 사례는 한서대학교의 항공특성화다. 코로나19로 항공분야가 박살이 났다. 늦게 항공분야를 카피한 대학들은 바짝 긴장해야 한다. 곧 코로나19는 종식될 거다. 고통을 이겨낸 선도대학은 이어지는 입시한파에 상당한 면역력이 생길 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관광분야 전문인력양성분야는 틈새시장이다. 대학명에 ‘관광’을 표기한 대학으로 제주관광대학교 등 3개 대학이 있다, 관광학과는 권역 내 관광인력의 수요가 뒷받침돼야 한다. 제주지역은 3차 산업의 비중 73.8%, 관광산업과 관련이 높은 숙박 및 음식점업의 비중 29.4%로 관광 특성화 지역이다. 권역 내 관광 수요에 맞는 사회맞춤형학과식 특성화로 가야 한다. 권역과 분야의 특성화 생존모델이다.

일반대와 전문대 간의 학과 경쟁이 치열해질 거다. 지난번 입시에서 교수들에게는 폼나지만 학생들은 갸우뚱하는 학과명을 내건 일반대 학과들의 피해가 컸다. ‘갑’인 입시생들이 골치아픈 건 싫단다. 전문대에서 인기 있는 학과를 일반대에서 카피하고 있다.

카피가 심한 분야가 피부미용분야다. 이 분야는 권역 내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전문대가 일반대보다 훨씬 많다. 뷰티케어학과, 뷰티디자인학과, 휴먼이미지학과 등으로 이름을 멋지게 해보려는 시도가 있다. ‘지숙’이를 ‘지아’로 바꾼들 그게 그거다. 유능한 교수를 비싸게 영입해서 품질을 제고해야지 통폐합 대상인 인접 학과 교수를 소속을 옮겨 재활용하려는 시도는 최악이다. 건양대학교와 같이 메디컬 뷰티로 특화하려는 시도는 좋다. 아직은 메디컬 뷰티 수요가 그리 많지 않지만 5년 내 원격진단이 활성화되고, 10년 이내에 원격진료가 도입될 경우 메디컬 피부 뷰티케어가 뜰 거다. 피부미용학과 교수들과 얘기하다 보면 디지털혁명에서 자기들은 예외가 될 거라고 확신하더라. AI, IoT, 빅데이터, 로봇기술들이 다른 곳에서 먹을 게 많으니까 아직은 피부미용분야를 넘보지 않지만 가까운 미래에 디지털기술이 넘어온다. 배재대학교 뷰티케어학과가 스마트 뷰티로 특성화하겠다는 시도는 눈치빠른 시도다. ‘실감미디어분야 디지털 혁신공유대학’사업과 ‘AI·SW중심대학’선정을 동력 삼아 디지털 문화예술대학으로 특성화하겠다는 시도 또한 생존 확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거다. 분야 내 적용기술의 차별화가 승패를 좌우한다.

대학과 고교생의 갑을관계가 역전됐다. 갑은 여유를 부린다. 시원한 곳에서 비싼 커피(coffee)를 마시며 어떤 대학들이 어떻게 학과를 카피(copy)했는지를 가려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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