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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다시 조국을 생각한다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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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6.09 14:37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펴낸 자서전 ‘조국의 시간’이 출고될 것이라는 뉴스가 떴을 때 내 주변의 평범한 여성 지인은 중얼거리듯 “미쳤어, 아직 정신 못 차렸군”하면서 조국을 비난했고, 평소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으로 보인 후배 교수 한 명은 “선배, 난 저 책 꼭 읽어봐야겠어”라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검찰수사와 멸문지화의 스토리가 담긴 화제의 책을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다만 지난 2년간 초미의 관심사였던 조국 수사와 그 사태를 바라본 국민들의 마음이 새삼 진심으로 궁굼해지기 시작했다.

조국 사태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진영 이데올로기의 매개체가 되었다. 왜 조국을 지지하느냐는 물음에 지지자들은 ‘조국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도 죄가 없다’고 항변하지는 못했고, 왜 조국을 비난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반대자들은 ‘조국이 이러저러하게 잘못했노라’고 즉답을 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와 그의 가족이 무슨 죄를 어떻게 저질렀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르는 것이 맞다. 수사와 재판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최종 결론은 나오지 않았으며, 조국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1심 유죄 판결도 항소심에서 검찰의 증거조작과 물증의 오염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 누구도 죄의 유무와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었다.

무슨 죄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조국 일가는 멸문의 화를 당했고, 일가족은 현대판 책형(磔刑; 기둥에 묶어 세우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에 처해졌으며, 군중은 이유도 잘 모른 채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다.

변명과 비난 사이에 유엔이 정한 인권조약은 증발되었고 가족의 보호와 윤리를 존중했던 미풍양속은 외면되었으며, 조국 사태를 사과하는 민주당 의원들조차 왜 사과하는지 스스로도 답하지 못하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국민도 당도 언론도 내남할 것 없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미 양심을 상실한 검찰과 재판부, 정당과 보수언론은 이 물음에 답할 자격이 없지만, 아직 시대의 양심을 갖고 살아야 할 우리 백성들은 자문자답해야 한다. 괴롭지만 우리가 왜 그랬는지 물어야 한다. 국민이 이 사태를 자문자답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역사는 없는 것이다. 조국 사태의 판단과 책임은 옳든 그르든 끝까지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슬픈 우리 역사의 정체성(Identity)이다.

사람은 누구나 거울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평생 자기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 타인만이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생긴 것이 평판이다. 타인의 비난과 칭찬은 거울이다. 깊이 생각하지 못해도 정당의 입장, 검찰과 재판부, 소문을 담당하는 언론들의 시각은 집단 거울이 되어 개인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말 따라 하기(verbal mirroring)’가 짧은 시간 내에 상대방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기법이라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고, 거울을 뜻하는 미러링은 다수의 입장을 급속하게 통일시키는 마법이 되었다. 우리는 이 마법에 걸려서 상당수의 국민이 김대중 대통령을 빨갱이로 몰았던 독재자에게 속았고, 일부의 국민은 검찰의 미러링에 넘어가 노무현 대통령을 죄인으로 단죄했으며, 타락한 재판부에 의해 삼성의 떡을 먹은 떡값 검사들을 고발한 노회찬 정의당 대표가 오히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조국 교수는 정치인이 아니다. 교수이자 관료였던 그가 혐의의 내용을 떠나서 김대중 대통령처럼 큰 규모의 미러링으로 대상화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조국 수사는 처음부터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죄가 논란이 되었고 재판정에서조차 검사는 본질을 벗어난 의혹을 연이어 쏟아놓았으며, 본질을 벗어난 온갖 설들은 피의사실로 둔갑해 보수언론의 받아쓰기로 전락했다.

국민은 미러링의 희생물이 되어 ‘신념 기억’에 시달렸다. 신념 기억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나 자신이 맞다고 여기는 심리적 상태를 가리킨다. 많은 국민은 영문도 모른 채 조국 사태를 신념 기억의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그것을 제공한 배경은 검찰의 ‘절차 기억’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사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수사는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이 말은 “내 본능대로 수사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흔히 할 수 있는 상식적인 말이라고 생각되지만 이 말은 평소 검찰이 가장 애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은 특정 행동이나 감정적 반응을 학습함으로써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자동적으로 학습된 반응을 보이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좋은 습관을 강화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본능적으로 나쁜 습관이 고착돼 융통성과 창의력을 증발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주로 군대나 관료조직에서 발생하는 맹목적이고 부정적인 관행을 만드는 요소로 지칭되지만 우리 사회에서 절차 기억이 가장 고정된 집단은 단연코 검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의 절차 기억은 얼마든지 국민의 신념기억으로 번져갈 수 있다.

그럴 리 없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솔직히 우리 국민은 불쌍하게도 국민을 학살한 장군 출신 독재자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경험이 있다. 가스라이팅은 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 행위로 ‘심리 지배’라고도 한다.

가스라이팅을 당한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가해자에게 점차 의존하게 된다.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가스라이팅을 자행해 민주주의를 오염시켰고, 국민은 그에 미러링 당하면서 각자 좌고우면했었다. 국민들은 힘들겠지만 자문자답해야 한다. 검찰과 보수언론, 이데올로거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이유도 잘 모른 채 십자가에 매달린 조국 일가에게 돌을 던지고 노려보며 부화뇌동(附和雷同)을 하지는 않았는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뒷모습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배움과 지식의 습득을 통해 진실에 접근해가는 ‘학습 기억’의 소유자가 되어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독재자를 물리치고 피 흘려 이룬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조국 일가에 대한 판단은 그 과정에서 따뜻한 휴머니즘과 정의로움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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