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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미루나무 연가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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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8.08 17:1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지난 7월 중순 퇴근 무렵 아내가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증평에는 세찬 바람을 동반한 비가 물 폭탄으로 변해 집에 오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단다. 운전 조심하라고 당부를 한다. 전화를 받고 증평으로 향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도로가 말끔하다. 국지적 소낙비가 기습적으로 내렸나 보다.

다음날 여느 때처럼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테니스장을 갔다. 주위에 있던 아름드리 미루나무 두 그루가 테니스장을 덮치고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한 사체처럼 길게 누워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세찬 비바람에 뽑힌 미루나무 뿌리를 살펴보니 앙상한 채 실뿌리도 없었다. 그 뿌리로 60여 년을 지탱한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나무가 몇 토막으로 잘려져 중장비에 실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동호인들의 그늘이 되어 주어 사랑받는 미루나무였기 때문이다. 키 큰 미루나무는 우리 어린 시절 고향마을에서 흔히 보던 나무여서 더욱 정겨웠었다.

미루나무 그늘에서 테니스를 치며 땀 흘리는 순간만큼은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 세상사 살다 보면 복잡한 일이 많고 힘에 겨운 일도 있다. 운동할 때는 모든 잡념이 없어진다. 서브, 스트로크, 스매싱, 발리 오로지 테니스에 몰입한다. 서브에이스, 드롭발리, 포치, 강스매싱, 멋진 발리라도 성공 시키면 그 순간이 최고의 기쁨이다. 주변에서 “나이스 샷”이라도 한번 콜 해주면 신이 난다. 멋진 플레이를 하거나 실수를 해도 웃음의 연발이다. 그 맛에 테니스를 하는가 보다.

테니스를 치고 미루나무 그늘에서 땀을 훔치며 쉴 때 너나 할 것 없이 농사를 지었다며 토실토실한 옥수수를 쪄서 내놓을 때나 맛있게 삶은 감자 맛은 일품이다. 그뿐인가. 자두, 복숭아, 수박 등 탁자 가득 풍년이다. 정성껏 준비해온 냉커피는 갈증을 해소하는 청량음료다. 서로 배려하고 섬기는 테니스동호인과의 만남이 마음으로 주는 격려다.

스포츠란 사람 마음을 단순하게 하고 한곳으로 집중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테니스는 마음과 마음을 통하게 한다. 복식조에서 파트너를 이루어 한 사람은 찬스를 만들어 주고, 또 한 사람은 스매싱이나 발리로써 작품을 완성한다. 파트너가 실수할 경우가 있다 ‘파이팅’으로 용기를 주거나 관용으로 따뜻함을 전한다. 진행 중에 징크스나 혼선기가 온다, 때로는 시합 중에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도 있다. 이때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도 갖게 해준다. 초록 잎을 가득 매단 키 큰 미루나무는 그런 우리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바람 따라 춤을 추기도 한다.

내가 테니스를 좋아하는 것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테니스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테니스는 늘 이웃과 함께하며 가깝게 지내도록 한다. 골프가 정적인 운동이라면, 테니스는 동적인 운동이다.

테니스는 매너가 엄하게 다루어지는 스포츠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테크닉이 훌륭하다 해도 매너가 나쁠 때는 상대방과 관중에게 불쾌감만 줄뿐이다. 상대방의 미기(美技)에는 아낌없이 축하해 주고 포인트가 불명확할 때는 상대방에게 유리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테니스는 승부의 시작이 있고, 또 끝이 있기 때문에 시작에서 끝날 때까지 한시도 팽팽한 긴장의 줄을 놓을 수 없다. 늘 인생에 대한 성찰의 자세를 무의식중에 훈련을 받고 있는 것과 같다.

증평에서 여름나기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미루나무 숲은 명품화를 통해 대형그네, 흔들의자 등 쉼터와 각종 놀이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보강천변 폐도에 경관 및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녹색길 조성으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벤치와 간이 물놀이 시설인 계류시설이 설치되어 호응도가 크다.

특히 뜨거운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간이텐트를 임시 설치해 미루나무 숲을 찾는 주민들에게 그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미루나무 숲 녹색 길은 평일엔 어린이집, 유치원생의 나들이 장소로, 주말엔 유아를 동반한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의 이용 편의를 위해 다채로운 야간 조명까지 갖춰 무더운 여름밤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증평군은 미루나무 숲을 명품 문화․휴식공간으로 가꾸고 분수 등 각종 시설을 설치하며 정성을 다하고 있다. 더욱이 토요 상설무대를 개최해 각종 공연을 펼치며, 주변에 그라운드 골프장 등 체육시설을 갖춰 지역주민들의 건강 및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보강천 녹색길 조성사업은 송산택지개발지구 조성으로 방치된 보강천변 폐도를 주민 편의시설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으로 한국도시설계학회와 경관학회가 주관한 경관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보강천 미루나무 숲의 명품화 사업과 연계하여 조화를 이루었다.

증평 보강천에는 다채롭고 풍성한 꽃밭과 계절별로 아름다운 꽃길을 조성해 코로나19로 지친 지역주민의 마음을 치유하고 생기 있는 증평을 만들어 가고 있다.

꽃모장에서 팬지, 비올라 등 봄꽃 10종 13만 본을 재배하기도 했다. 꽃모장에서 자란 꽃들을 미루나무숲 일대에 식재해 4월에는 활짝 핀 꽃을 보며 만연한 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주요도로변, 청사 주변 등에도 봄꽃을 심어 도시경관이 한층 아름다워졌다. 이뿐인가. 보강천 미루나무숲에 만남의 공간이라는 주제로 계단식 쉼터를 조성했다.

미루나무숲은 여름철이면 짙은 녹음과 그늘로 인근지역에서도 많은 사람이 찾을 만큼 휴식공간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열리는 야외 문화예술공연장이기도 하다. 5만여 ㎡ 면적의 미루나무숲은 예비군 교장으로 사용했던 1970년대 정부의 산림녹화사업 권장으로 속성수인 이태리포플러 100여 그루를 심어 지금에 이른다. 또한 계절별로 30만 포기의 각양각색의 꽃을 심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어린이 물놀이장, 풍차, 바닥분수대 등 각종 놀이시설을 조성해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다만 옥에 티 격으로 인접한 보강천 수질이 좋지 않아 하천물에 발을 담그지 못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증평군은 환경부 선정으로 추진하는 통합·집중형 오염 하천 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보강천 수질 개선으로 미루나무 숲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선물이 될 것이다.

미루나무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낙엽활엽수로서 영어 명칭인 ‘포플러’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어 이름인 ‘미루나무’는 미국(美)에서 온 버드나무(柳)라 하여 ‘미류나무’라고 불렀다가 지금은 ‘미루나무’로 불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무렵에는 도로변의 가로수나 학교, 마을 광장 등에 미관용으로 많이 심었기에 우리 세대는 미루나무가 친구였고, 여름 바람에 잘랑 이는 미루나무 잎을 세며 첫사랑 추억도 새겨 놓았다.

미루나무는 나뭇가지가 넓게 퍼져나가는 수형(樹形)이다. 그늘을 잘 만들고 속성수로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목월 시인은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 / 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놓고 갔다’고 흰 구름의 친구로서 키다리 미루나무를 노래했다.

나도 자랄 때 미루나무의 응원을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지금은 보강천 미루나무 숲에서 동호인과 운동을 하며 늙지 않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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