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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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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8.09 18:41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천생의 인연이 있어야 이생에 부부의 연으로 이어진다고 했던가. 요즘은 결혼하는 수는 줄고 이혼하는 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소중한 인연으로 만났는데 왜 그럴까. 핵가족화되면서 자식 수가 줄어들고 귀하게만 살아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없어졌나. 성격 차이라는 말로 미화하기에는 뭔가 미심쩍다. 얼굴을 모르고 결혼했어도 평생을 서로 위하며 산 어르신들을 봐라.

비가 그치자마자 매서운 더위가 다가왔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 역병 환자 수는 상향곡선을 그리며 내려올 줄을 모른다. 물놀이를 갈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라 원두막에 물놀이할 수 있는 풀장을 마련했다. 원두막이라 그늘막이 필요 없고 지하수를 뽑아 올리니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다.

내게는 행운 같은 아들이 있다. 아들의 가족을 위해 마련한 가정식 풀장이다. 하루 전날 물을 채워놓아도 너무 차서 물을 끓여 부어 물의 온도를 높여야 했다. 5살 아이는 가로세로 5m×2.2m 되는 큰 풀장에 두 살 아이는 작은 풀장에 놀게 했더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한다. 우선 안전한 곳에서 놀게 할 수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지치지도 않는지 밤이 되도록 물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게는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진 아들이 있다. 20여 년 전 만나 아들과 자주 여행도 하고 어려움이 있거나 상의할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가며 모자간의 정을 쌓아갔다. 딸과의 마찰에도 중간 역할을 잘해 주며 친아들 이상으로 의지했다. 딸 하나만 있는 내게 행운처럼 다가온 아들은 아마도 전생부터 이어져 온 소중한 인연일 것이다.

밤이 늦도록 물놀이에 정신이 팔린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갔다가 다음 날 온다고 한다. 더위에 어머니 너무 고생한다고 체면을 차린다. 여름 손님이 힘들다는 것을 생각한 아들의 염치다. 어차피 온 거 캠핑 왔다고 생각하고 자고 내일 더 놀다 가라고 했다. 애들 재우고 술도 한잔하면서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아들과 며느리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시작했다. 그간 내가 알지 못한 많은 일이 두 사람에게 지옥 같은 삶을 만들어 가고 있었나 보다. 40년 정도 다른 환경에서 살던 두 사람이 만나 맞추어가는 것이란 생각하기에는 골이 너무 깊은 것 같았다.

둘만의 문제라면 풀기 쉬웠을 것 같다. 나이만 들었지, 아이 같은 며느리는 모든 것을 친정엄마와 언니들에게 사소한 것까지 상의했나 보다. 친정 식구들은 며느리의 말만 듣고 아들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한 것 같다. 장서 간의 문제는 결국 두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상처를 보듬기보다는 서로의 상처를 헤집고 소금까지 뿌리며 더 싶은 상처를 만들고 있었다.

삶의 숙제는 어떻게 해야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수많은 숙제 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니. 두 사람의 결혼에 주례 아닌 주례를 선 지 6년이 지났다. 40대 후반의 아들은 남매를 두고 잘살고 있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즈베키스탄에 내려오는 이야기다. 코칸트 지방에 난폭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찻잔 하나를 유독 아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잔치를 벌이던 중 찻잔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크게 상심한 왕은 각 지역에 있는 도자기공들을 불러 깨진 잔을 원래대로 만들어 놓으라면서 호통을 쳤다. 왕의 명령에 당황한 도자기공들은 100세가 넘은 장인 ‘우스만’을 찾아갔다. 우스만은 왕을 찾아가 일 년의 시간을 요청했고 그 뒤로 복원작업에 몰두했다. 드디어 약속한 1년이 되는 날, 우스만은 손자 자파르와 함께 보자기를 들고 왕 앞에 나타났다. 보자기 안에는 완벽하게 복원된 찻잔이 빛을 내고 있었고 왕은 너무도 흡족해했다. 사람들은 찻잔을 어떻게 복원했는지 궁금해했고 우스만의 손자는 비술이 궁금해 작업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엔 깨진 찻잔이 그대로 있었다. 사실 우스만은 일 년 동안 작업실에서 깨진 찻잔과 똑같은 찻잔을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달라고 했던 것이다. 이를 보고 놀란 손자에게 우스만은 말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깨어진 조각을 붙이는 것보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 더 이로울 때도 있단다.”} 이 이야기를 두 사람에게 해 주어야겠다.

지나간 시간은 이미 전생이다. 오늘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고 서로를 아끼고 양보하고 이해하면서 살면 좋겠다. 찻잔이 깨진 것이 서로 네 탓이라며 깨진 찻잔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찻잔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 갔으면 좋겠다.

상대가 나에게 잘해 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얼마나 더 잘해 줄까를 생각하면 싸울 일이 없다고 한 법정 스님의 주례사가 생각난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성실하게 삶의 숙제를 풀어갔으면 좋겠다. 어느 시인은 소풍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 했다. 서로를 위하며 즐거운 소풍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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