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대중에서 시민으로, 시민에서 주인으로

홍만표 충남도 국제통상과장·지역정책학박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1.09.02 15: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홍만표 충남도 국제통상과장·지역정책학박사
홍만표 충남도 국제통상과장·지역정책학박사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시민참여예산제도는 브라질 남부 도시 포르투 알레그레시가 시원이다. 브라질은 1964년부터 군사 정권하에 있었지만, 1985년에 민정으로 전환되어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좌파 정치 세력이 대두되어 브라질에서도 사회주의 정당인 노동자당 (Workers Party)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쟁취한 후, 1988년에는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다. 군정 하에서 제한되어 있던 지방 자치는 정권 교체와 함께 민주화와 지방 분권화가 진행되고 강화되었다.

포르투 알레그레시에서도 1988년 시장 선거에서 노동당의 두토라 (O. Dutra) 씨가 선정됐다. 노동자당은 정권 공약 중에 한정된 예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시민참여예산제도(포르투갈어로는 ‘참여예산·Orçamento Participativo:OP’)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당시 OP의 목적은 정치 경제적 활동에서 고립 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내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의미가 있었다. 동시에 이들의 지지를 얻어 냄으로써 의회 다수파를 견제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또 시민이 직접 예산에 참여하여 전(前)정권에서 계속되고 있던 정치 부패를 근절하고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의도도 내재했었다. 두토라 시장은 OP가 시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시민 단체와 함께 협의를 거듭해갔고, 회의를 거듭해가며 참가 인원이 많아졌다. 이처럼 많은 시민이 동참하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노동자당의 노력이 있었다.

첫째 노동자당은 지구(地區)단위의 주민조직을 육성하여 풀뿌리 민주주의의 강화를 도모했다. 지역의 자치회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OP에 참가 할 수 있는 환경을 정돈한 것이다. 둘째 새로운 헌법에 의해 지방 분권이 진행된 점이다. 지방분권의 심화로 재정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전돼 인프라 정비 등에 필요한 예산을 확충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시민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재정 분야가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

셋째로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구조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OP가 시작됐던 1989년 당시 참여 예산에 관심을 가진 인원은 1,000명 미만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 참여 인원이 지속적으로 증가, 2003년에는 총 5만명까지 도달하는 신기원을 이뤘다. 이 같은 결과는 그동안 정치·행정에서 배제된 사회적 소외계층들이 OP를 통해 생활과 인프라 등 자신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신뢰를 구축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포르투 알레그레시의 시민참여 예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의 권익옹호를 실현 한 것이다. 시민들이 OP를 통해 예산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등 직접 민주주의를 한 발짝 전진시킨 것이다. 둘째, 가난한 지역에서 행정서비스와 인프라가 눈부시게 개선 된 것이다. 일각에는 이러한 현상이 개발도상국에 나타나는 효과로 치부하지만 그럼에도 사회 균형 발전에 의미심장한 선례를 보인 것은 틀림없다. 셋째로는 행정개혁의 실현이다. 주민참여로 행정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부정·부패가 적어지는 등 일 잘하는 지방정부의 조건이 일정부분 형성된 것도 주요하게 살필 점이다. 무엇보다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는 정치와 시민사회가 함께 토의민주주의의 기초 체력을 강화시켜 왔다는 점이다. 아무리 여러 조건들이 형성돼 있다 하더라도 끈질기게 토의를 이어나가는 노력이 없었다면 OP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주민참여 예산제는 이제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포르투 알레그레시의 사례에 힘입어 OP는 브라질 전역을​​ 비롯한 남미국가, 그리고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퍼져 나갔다. 한국에서는 2003 년 광주광역시 북구가 처음으로 시민참여예산제도를 도입했고 이후 대전광역시가 도입·운영 중에 있으며, 2006년에는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분명한 것은 시민참여 예산제도의 영혼은 토의민주주의가 있다는 점이다. 토의민주주의는 오늘날 시민사회가 나아가야 할 하나의 방향이자 비결이다. 중앙정부의 힘이 강한 한국의 지방자치 현실은 그리 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중심이 강하면 주변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대부분 대중의 삶은 주변으로 물러나기 십상인 게 오늘날의 암울한 처지다. 토의민주주의와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산이 됐던 그 무엇이 됐던 시민참여의 통로가 절실한 시대다. 대중이 시민으로, 시민이 중심으로 바로 서고 싶다면 참여하고 논의하는 수 밖에 없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