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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강국, 대한민국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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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0.26 15: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한국의 문화 파워가 거세다. BTS로 대표되는 K-Pop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영화제들을 점령하고, 윤여정의 오스카상 수상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와중에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저 ‘국뽕’ 이라 치부하며 한국의 것이 해외에 소개되는 것에 마냥 기뻐하던 차원을 넘어서 문화 전반에 한 축으로 우뚝 섰다.

유럽 체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일본의 축구 선수 나카타가 그네들이 아는 아시아인의 전부로 비치던 때였다, 번화가에서 한국 사람이 지나가도 ‘나카타!’를 외치고, 딴에는 아는 체 한답다고 ‘곤니찌와’ 혹은 ‘니하오’로 인사하며 말을 걸던 시절이었다. EU 출신 유럽인들과 NON-EU 국가 입국 줄도 서로 달라서 공항 출입국 심사도 남들보다 배로 걸렸다. 거기에 체류 허가증을 갱신하기 위해 외국인 사무소에 줄이라도 설라치면, EU 회원과 미국·캐나다·일본인이 아닌 나머지 모두는 제3세계 민족 취급을 하며 차별 아닌 차별을 받으며 온종일 줄을 서 있곤 했다.

그러나 음악학교에선 얘기가 달랐다. 오페라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이탈리아 전역의 모든 음악학교 실기 수석은 대부분 한국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보편복지로 수업료 대부분을 면제해주다시피 한 이탈리아와 독일 음악학교에서는 이런 한국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자국민의 세금으로 외국인들을 공부시키는 꼴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의 우수한 실력이 있어야 음악학교가 돌아가기에 한국인은 일종의 계륵 취급을 받았다. 학생으로 받자니 세금유출이라는 여론이 신경 쓰이지만, 자원이 우수하니. 그래서 오페라 연기 수업이나 앙상블 수업 때 현지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과 같은 조를 짜서 연습하고 연주하는 걸 선호했다.

꿈의 무대라 불리던 이탈리아의 스칼라. 독일과 비엔나의 국립극장들. 그리고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를 비롯한 유럽과 미주의 전역에 한국인 주역들과 합창단원들이 있다. 그리고 동양인들의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나 오페랄리아 등의 글로벌 대형 콩쿠르에서도 매년 한국인 우승자와 입상자가 나온다. 기악은 말할 것도 없이 조성진을 필두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국제무대를 휩쓴다. 음악 1세대를 거치고 2∼3세대의 우수한 자원들이 교직으로 돌아와 후학들을 양성해서, 요즘 학생들의 수준은 교수진들의 학생 시절보다 월등한 실력을 자랑한다. 동아시아 3국 한·중·일 에서도 한국의 클래식 파워는 독보적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클래식을 문화 사대주의로 치부하며 기득권 귀족문화로 치부한다. 대부분 클래식을 제대로 접해보지 않았거나 예전 클래식의 병폐나 강요되고 왜곡되었던 연주문화를 잠깐 경험하고는, 그 모습이 전부인 양, 조롱하고 깎아내린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의 걱정은 클래식을 즐기는 관객층의 고령화에 있다. 그래서 유럽공연장이나 오페라 하우스 객석이 백발의 노년인 은빛 물결이 넘실거린다고 자조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나라의 클래식 공연장은 온통 젊은이들 투성이다. 공연이 끝나고 개인 블로그나 SNS에 거리낌 없는 비평과 애호를 적극적으로 나타내는 것도 2·30대들이다. 예전에 가족 잔치로 치부되던 끼리끼리의 연주도 간혹 있지만, 그런 경우는 알아서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자정작용도 충분히 돌아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문화산업에 대한 비평과 객관적 담론이라는 핑계로 재정 문제만 생기면 경제 논리로 클래식 시장과 순수예술 분야부터 칼을 들이댄다.

오페라나 클래식이 전망이 없고 예산만 잡아먹는다고 난리다. 그 소리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늘 상존하는 위기처럼 때마다 존폐기로에 서 있다며 클래식 무대를 거론한다. 그런 담론들이 오가는 시절에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서 추진된 대구 오페라 페스티벌은 좋은 사냥감이었다. 서울서도 헉헉대는데 지방에서 오페라 하우스에 오페라 축제는 웬 말이냐고.

그랬던 대구 오페라 페스티벌은 지금은 티켓이 없어서 못 들어가는 대한민국 대표 오페라 축제가 되었고 전 세계 프로덕션들이 주목하는 성공사례가 되었다.

필자의 학생 시절 오페라 공연 횟수와 지금을 비교하면 몇 배 이상 성장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만 사립 오페라단 제작 건수가 국·공립 오페라단 제작 건수를 훨씬 상회한다. 수익성 보장이 불확실해도 대부분 단체는 풍성하고 글로벌한 자원들을 가지고 사명감으로 공연을 제작한다.

여전히 혹자들은 틈만 나면 소수만 누리는 귀족문화로서 클래식과 오페라를 공격한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지는 게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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