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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교육 필요할까?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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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1.18 16:0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얼마 전 때아닌 ‘무운’ 논란이 있었다. 발단은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안철수 대표를 향해 “무운을 빈다”라고 말한 것을 한 방송 기자가 “운이 없기를 빈다고 말했다”며 잘못 해석하면서 비롯되었다. 당시 포털사이트에는 무운의 검색량이 치솟았다. ‘무운을 빈다’에 쓰인 무운(武運)은 본래 ‘무인의 운수’를 뜻한다. 그러나 일부는 이를 ‘운이 없다(無運)’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서 벌어진 일이다.

한자어를 모르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본뜻을 잘못 이해하여 벌어지는 해프닝은 심심찮게 벌어진다. 지난 7월 도쿄 올림픽 당시 일부 누리꾼들은 ‘여자 양궁 대표팀이 9연패를 했다’는 기사 내용을 두고 “왜 우승을 했는데 연패라고 하느냐”며 댓글로 의문을 표시했다. 연패는 ‘연속 패배(連敗)’라는 뜻뿐만 아니라 ‘연달아 우승(連勝)’이라는 뜻도 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다.

한 단어조차도 그러할진대 사자성어의 경우는 더욱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국정감사 당시 등장한 개 인형 머리에 양 그림을 붙인 모양의 기사 댓글에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이 많았다.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지만 실속은 보잘것없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양두구육(羊頭狗肉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팔다)’ 인형을 내세워 이른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비판하려는 취지였으나 상당수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필자도 학보사 편집장 시절 후배 기자가 한글로 쓴 ‘지난한’이란 단어를 두고 오기(誤記)라 생각하고 지적했다가 ‘더할 수 없이 어려움’이란 의미의 ‘지난(至難)한’이란 설명을 듣고 무안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칼럼 기고에서 시국을 時局이 아닌 時國으로 잘못 써 망신살을 산 바도 있다. 나름 한자 교육을 받았고, 어느 정도 한자를 안다고 생각함에도 이러할진대 교육도 받지 않고 자란 세대에게는 한자어로 인한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님이나 자식 등 가족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20~40대 절반 정도(20대 45.5%, 30대 54.7%, 40대 44.3%)가 ‘쓸 수 없다’고 나타났다. 반면, 50~60대는 70% 이상 ‘쓸 수 있다’고 답했다. 20대(87.6%)와 30대(82.8%)는 ‘한자를 몰라 불편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중 ‘불편한 적이 자주 있다’는 비율이 20대에선 22.3%로 50대(6.8%)와 60대(5%)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그럼에도 ‘한자 공부할 필요성 여부’에 대해서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0대(36.1%)가 가장 낮았고, 40대(52.8%), 60대(59.9%), 50대(65.0%) 순이었다. 결과적으로 젊은 세대는 한자를 몰라 불편은 하지만 굳이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한자를 좀 아는 기성세대는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한문 혼용에서 한글 전용화로의 전환 논의는 해방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1945년 9월 ‘한자폐지실행회 발기취지서’가 발표되고, 그해 12월 조선교육심의회의 문자정책에 관한 결정사항 속에도 한자 폐지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1951년 ‘상용 일천한자표’가, 1957년 ‘임시제한 한자일람표’가 문교부에 의해 공표되었다. 1962년 ‘한글전용 특별심의회 규정’이 나오고, 1968년 국무총리 훈령 제68호로 ‘한글전용에 관한 총리훈령’이 나왔다. 1972년 ‘한문과 교육과정 심의위원회’를 거쳐 확정된 중고등학교 한문교육용 제한한자 1,800자가 공표되면서 한자 교육은 ‘무제한’에서 ‘제한’으로 변화했다.

일상에서의 한자도 80년대 초부터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주요 일간지들이 기존의 종편집에서 횡편집(가로짜기)으로 틀을 바꾸면서 한글 중심의 기사를 내보냈다.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한자를 익히는데 도움을 주던 일간지였는데 그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이후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키보드에 익숙한 세대에게 한자는 더욱 활용가치가 떨어졌다. 또한 2000년 당시 ‘제7차 교육과정’ 이후 한문이 필수 과목에서 빠진 탓도 크다. 이처럼 한문 자체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면서 최근 국가공인자격 폐지와 함께 정기시험 운영마저 중단되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한자를 완전히 폐지하자는 쪽과 제한된 한자라도 사용하자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자 기초 교육을 강화해 문해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한글학회를 중심으로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말의 상당 분은 한자어란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록된 명사의 약 80%는 한자어다. 따라서 한자는 한문만이 아니라 한자어의 이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적어도 미식가(美食家)를 味食家로 쓰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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