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대신 짚신을 신는 농촌 그 때를 아십니까

우리문화 들머리

2013-07-02     충청신문

조선의 농촌은 파멸의 그 밑에까지 다달앗으므로 이제는 바야흐로 그 갱생을 부르짖어 마지아니한다.

그러므로 전북 옥구군 내에 있는 원우, 둔덕 등 23개 촌락에서는 “갱생의 길은 자급자족”이라는 표어 밑에서 진흥회라는 모음을 조직한 후 촌락인 전부가 짚신 외에는 일체 다른 신발은 신지 아니 하기로 하였다 한다. 그리고 군에서는 농촌구제책의 일조라 하여 금후로는 일원을 목표로 하고 적극적으로 장려를 하겟다 한다.“

위는 1933년 10월 1일 치 동아일보 기사 일부입니다. 농촌에서 쌀을 수확하면 대부분 일본으로 강탈해가니 먹고 살게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농촌에서는 대부분 굶기를 밥 먹듯 하고, 곡식 대신 먹을 수 있는 구황식물을 찾아 헤맸으며, 지세를 못내 수많은 소작농들이 고향을 등지고 야반도주를 하곤 했습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생활비를 절약한다고 고무신 대신 짚신을 신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1934년 4월 18일치 “짚신으로 도라가는 농촌”이라는 기사를 보면 농촌에서는 전년도에 비해 고무신 판매가 131만족 감소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말이 절약이지 얼마나 살기가 팍팍했으면 편리한 고무신을 신다가 다시 짚신으로 돌아갔을까요? 요즘 청소년들이 수십만 원짜리 운동화를 자랑스럽게 신기도 한다는데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