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자 이기숙 할머니 망연자실

남북이산가족 상봉 무기한 연기

2013-09-22     김형중 기자
▲ 21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닷새 앞두고 북한 측이 돌연 이산가족 상봉의 무기한 연기를 발표하자 조카를 만날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이기숙(81·사진 왼쪽, 대전시 유성구 궁동) 할머니가 망연자실한 듯 선물꾸러미를 내 놓고 실의에 빠져 있다. 사진은 오른쪽 아들 김영진씨.

“이제 나흘 밤만 자고 나면 60여 년간 꿈에 그리던 조카들의 얼굴을 어루만질 수 있게 되는데…. 내생에 마지막 기회였는데…, 돌아가신 부모님과 오빠의 소식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는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닷새 앞둔 지난 21일 북한의 조카들을 만날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이기숙(81·대전시 유성구 궁동) 할머니는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추석 상봉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북한의 발표를 아들인 김영진씨(54)에게서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소식은 이 할머니에게 날벼락과도 같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할머니는 오빠가 돌아가시고 조카 2명만 생존해 있다는 북측의 소식으로 조카 이 강자(68)·강주(65)씨를 만난다는 소식에 추석연휴 내내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밤잠도 설쳤었다.

조카들에게 줄 오리털 파카와 속옷, 생필품, 의약품 등의 선물 꾸러미를 ‘쌌다 풀었다’를 몇 차례 반복하며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아들 김 씨는 “이게 웬 날벼락이에요. 어머니께서 외사촌 누이들을 만날 날만을 손꼽으며 달력에 표시를 하면서 ‘이제 나흘 밤만 자면 된다’고 크게 기대하셨는데…”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남북이산가족찾기를 시작으로 매번 신청했지만 이번에 수십 년만에 선정돼서 너무 기뻐하시던 어머님이셨는데 이제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정말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황해도 개성시 만월동 483번지가 고향인 이 할머니는 6·25전쟁 1·4후퇴 때 1주일만 피신한다면서 부모님과 큰오빠가 고향에 남고 2남2녀중 1남2녀가 서울로 내려온 이후 지금까지 생이별을 하고 고향에 가지 못했다. 전쟁이 터진 이후 60여 년간 친정과는 연락이 끊겼다.

이 할머니는 서울서 대전으로 대구, 부산으로 당시의 전세가 수세로 몰리면서 잇따른 피난길에 해주가 고향였던 남편 김수동씨(85)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경찰이었던 남편의 임지를 따라다니면서 충북에서 살다가 20여 년전에 대전으로와 자리를 잡았지만 남편이 지난1968년 몸이 아파 경찰을 그만두면서 고생길은 더해졌다.

친정집이 부유해 개성 호수돈여중을 졸업한 이 할머니는 안해봤던 연탄대리점, 운수업, 하숙집, 생선장수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 할머니는 “5년전에 대장암수술을 해서 내몸이 어찌 될지 몰라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손꼽아 기다려 왔는데 너무 슬프다”면서 “죽일 놈들”이라고 짧고 강하게 말했다.

아들 김씨는 “사실 어머님의 병세가 심상치 않고 여기 저기 아픈 곳이 늘어만 가고 있어 이번 방문이 첫 번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았는데 이 지경이 됐다”며 “1~2달 후에라도 재개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25∼30일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자는 대전에서 3명을 비롯해 세종시와 충남북도내 모두10여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