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작가의 한국어 이야기] 눅다, 늘구다

2015-12-30     충청신문

시장에서 물건을 사다보면 주인과 손님이 물건값을 두고 ‘싸다’, ‘비싸다’로 논쟁을 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의 순한글 말이다. 한자말로는 ‘저렴하다’라고 한다.


반면 북한에서는 값이 ‘싸다, 저렴하다’를 ‘눅다’를 ‘싼값’이나 ‘저렴한 가격’보다 ‘눅은값’을 잘 사용한다. ‘헐값’도 사전에 ‘눅은 값’ 이라고 기록해놓았다. ‘눅다’는 원래 ‘반죽이 눅다’, ‘눅은 과자’라 하여, 반죽이 무르거나 바삭바삭하던 것 따위가 물기가 스며 부드러워진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성미가 눅은 사람’, ‘추위가 눅었다’하여, 성질이나 기세가 너그럽거나 수그러진(누그러진) 상태를 이르기도 한다.


북녘 사전에는 또 ‘눅은 데 패가 한다’ 는 경구가 있다. 물건 값이 싸다고 많이 사들이다가는 살림을 망친다는 뜻으로, 필요한 만큼 돈을 쓰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싼 것이 비지떡’이라는 말을 ‘눅은 것이 비지떡’이라 하지는 않는다.


보통의 물건 값보다 싼 물건인 ‘싼거리’를 북녘에서는 ‘눅거리’라 한다. 평양방송이 외국인 투자가들이 부동산 값이 떨어질 때 눅거리로 사들였다가 그 값이 올라갈 때 동시에 팔아 치워 폭리를 얻으려 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국어연구원 ‘북한 방송 용어’) 눅거리는 ‘실속 없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말한다.


* 말로만 칭얼대는 눅거리 사랑 마세요.(이순옥, 중국, ‘사나이다울 순 없나요?’)


북한에서는 ‘늘이다, 늘구다’를 문화어로 쓰고, ‘늘리다’는 안 쓰는 것 같다.(사전에 올림말이 없다) 그 쓰임새도 다르다.


* 상품의 가지수를 늘이다.(북)/ 가짓수를 늘리다.(남) * 유치원 탁아소를 늘이다.(북/ 늘리다·남). 남녘에서 ‘늘구다’는 ‘늘이다’와 ‘늘리다’의 사투리로 다룬다. 문화어에서는 ‘수효를 늘구고, 생산을 늘군다’ 따위로 쓴다. ‘늘이다, 늘구다’를 각각 남녘의 ‘늘이다, 늘리다’ 뜻으로 아울러 쓰는 셈이다. 중국 등지에서도 그렇다.


* 편제 인원을 늘이다.(조선말사전, 중국) * 식량을… 열흘을 더 늘구어 먹었으나 그것마저 이젠 몽땅 떨어졌다.(여영준 ‘준엄한 시련 속에서’, 중국) * 천 짜는 공장도 / 넉넉히 늘구리라. (김광현 ‘평화의 노래’, 옛 소련) ‘늘구다’를 ‘늑장, 늦장(북) 부리다’ 뜻으로도 쓴다.


* 면허증을 안 보이려고 지들지들 늘구던 운전사는…. (로정법 ‘고향의 모습’, 북) ‘늘구다’의 맞선말 ‘줄구다’는 문화어에 넣지 않았다.


그러나 북에서는 ‘-구-’ 파생어를 문화어에 많이 포함시켰다. 걸구다(=걸우다), 낚구다, 딸구다, 떨구다, 말구다(=마르다. *재목을~), 불구다(=불리다. * 콩을 ~), 시달구다, 아물구다. 얼구다, 여물구다, 절구다,….


우리는 길이는 늘이고, 분량 따위는 늘린다고 사용한다. 엿가락처럼 늘이듯 말을 길게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머리를 땋아 ‘늘이다’는 아래로 길게 처지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