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포럼] “한 가지만은 아니다”

김대열 부여고 교사

2019-12-18     충청신문
김대열 부여고 교사
불교문화가 사회문화를 이끌어가던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내 어려운 처지를 현 사회제도나 내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생에 “선업(善業)”을 쌓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다음 생을 좋게 하려면 지금 선업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 “업보(業報)론”이 사상의 주류였다. 이런 문화 속에서 이익을 보는 이는 늘 높은 신분이거나 부자들이다. 주변에서는 이들이 전생에 선업을 많이 쌓아서 지금의 호화를 누린다고 생각했다. 업보론은 당시 부정 부패 적폐가 만연하여 민초들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음에도 그 원인을 민초 자신들의 업보 때문이라고 체념하게 하고, 신분제도나 가진 자들의 부정 부패 적폐가 원인이라는 것을 감추는데 한몫했다.

고려를 조선으로 바꾼 정도전은 업보론을 부정하고 지금의 부정 부패 적폐를 해결하면 민초들도 질이 좋은 삶을 누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도전이 업보론를 비판할 때 술맛을 예로 들었다. 어떤 누룩을 사용했는지, 꼬두밥을 찔 때 어떤 쌀로 했는지, 꼬두밥 물의 양은 어떠했는지, 김이 새지 않게 잘 막았는지, 누룩과 꼬두밥의 비율은 어떻게 했는지, 날씨는 어떠했는지, 방안의 습도와 온도는 어떠했는지, 며칠 만에 개봉했는지, 막걸리를 거를 때 어떤 물을 사용했고 그 비율은 어떠했는지, 누구랑 술을 마셨는지, 어디서 마셨는지, 안주는 무엇으로 했는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변수가 있는데 어떤 것 한 가지만 들어 이것이 바로 좋은 술맛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술맛에 수많은 변수가 있듯, 지금 나의 상황은 수많은 변수에 의해 생긴 것이지 단순하게 업보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여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수업시간 질문받고 있는데 한 학생이 조용히 다가와 “선생님 제보해도 돼요?” 했다. 말해보라 했더니 힐끗 눈으로 방향을 가리키면 “저 친구 지금 핸드폰하고 있어요.” 그쪽을 봤더니 맨 뒤 구석 쪽에 앉은 학생이 머리를 책상에 대고 책상 밑에서 손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조용히 접근해서 보니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등을 콕콕 찌르니 그때 서야 머리를 들어 보고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주머니에 감췄다. 핸드폰을 받아들고 담임 선생님한테 넘겨 규정대로 처리하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두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고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씩씩거렸다. 한 학생이 “야! 네가 잘 못 해놓고 선생님한테 그러면 안 되지!”하니까 벌떡 일어나서 그 학생에게 다가가 눈을 크게 뜨고 주먹을 휘두를 자세를 취하자 다른 학생들이 말렸다.

마침 종이 나서 학생들이 교실을 빠져나갔는데 핸드폰을 압수당한 학생이 와서 한참을 울더니 “핸드폰 돌려주면 안되요?” 했다. 이미 반장을 통해 담임 선생님한테 넘겼다 했더니 체념한 듯 크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앉더니 “친구들이 나를 자꾸 놀려요.”하면서 학급 친구들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했다.

사실 이 학생은 학급에서 핸드폰 담당자였다. 아침에 핸드폰을 가방에 모아 제출하고 저녁때 나눠주는 일을 하는데 교실에서 교무실로 가지고 가는 동안 자기 것을 살짝 빼돌려 게임하는데 사용했다. 이미 나한테도 몇 번 경고 받은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이 모습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핸드폰 담당자가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계속했는데 변화가 없자 제보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친구들이 자기를 놀린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상담이 필요할 것 같아 상담실에 상담을 요청했다. 나중에 상담 결과를 물어보니 이 학생이 자기를 놀렸다는 학생들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겠다고 했다 한다. 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다.

지금 내게 닥친 수많은 어려움이 전생의 업보 때문만은 아닐 것이며, 내게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학생을 제보한 이유도 한가지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후에 닥칠 일도 한 가지로 만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섣불리 “원인은 이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면 틀릴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