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성적평가에서 ABCD 학점이 없어진다면
윤석환 충남도립대학교 자치행정학과 교수
2020-11-03 충청신문
무엇보다 혁신적인 것은 성적평가방식의 전환이다. 학부생들이 수강하는 모든 교과목에 대한 성적평가는 통과 또는 탈락(pass/fail)으로만 평가되고 기록되도록 하였다. 전통적인 ABCD라는 성적평가방식을 없앤 것이다. 학업성취도에 대한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평가는 교육의 중요한 영역이기에 그 변화는 파격적이다. 성적에 제약받지 말고 관심 있는 다양한 교과목을 수강하라는 융합인재로의 유인이다. 성적 때문에 다른 전공 교과목 수강을 꺼리던 현실적 이유에 대한 정확한 처방이기에 진보적이다.
물론 통과와 탈락이라는 평가 방식이 새로운 건 아니다. 교양이나 현장 교과목에서는 이전부터 많이 활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전공 교과목에서는 생소했지만, 그것도 이제는 낯선 것도 아니다. 비대면 강의가 진행되면서 절대평가의 보편화가 이루어졌는데, 통과와 탈락이라는 평가 방식과 흡사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적평가방식을 바꾼 목적이 같은 것은 아니다. 카이스트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지만, 비대면 강의에 따른 절대평가는 단순히 성적평가방식만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전공 교과목에 대해서도 통과와 탈락이라는 평가 방식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그래서 비전공자의 수강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는 모든 대학에서 발견되는 바람직한 변화의 시작이다.
카이스트는 성적평가방식을 없앤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성적평가방식을 퇴출한 것이지, 학생들의 역량평가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에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를 설정하도록 하고 그 해결책을 포트폴리오로 작성하도록 하였다. 계량화된 또는 서열화된 교과목 성적이 아닌 실제적인 문제해결 능력에 대해 사회로부터 평가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급진적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졸업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고전과 명저 등 100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에 3년간 참여하도록 하였다. 단순히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읽은 책에 대하여 2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원고지 50장 이상의 서평을 작성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의 두툼한 서평집을 자신의 성취를 통해 갖도록 하겠다는 목적이다. 그래서 보수적이다.
2021년부터 시작되는 카이스트 융합인재학부의 혁신과 교육실험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 혁신과 실험이 성공하여 모든 대학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