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의무교육의 헛바퀴 질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2021-08-22     충청신문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 곧잘 터진다. 온 국민을 분노하고 흥분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침울하고 참담하게 만드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이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나 ‘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킬 나쁜 짓’이다.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온 국민은 큰 충격에 빠져든다. 충격에 빠지는 것은 국민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정부라고 부르는 국가도 큰 충격에 빠진다.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은 국가가 수행해야 할 첫 번째 과제이며 어쩌면 존재 이유다. 개인은 스스로 안전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를 세워 체계적으로 안전을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 외부침입을 막기 위해 군대를 편성하기도 하고, 내부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경찰을 조직하기도 한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해 소방조직을 운영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국가가 나서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각종 기구를 만들고 법을 통해 위해요소를 제거하고자 노력하지만, 사건과 사고는 늘 우리 곁에 머물며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형 사건이 터지고,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대형 사건과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국민은 사건 당사자와 사고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엄중한 문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국가는 이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기존 관련법의 처벌 수위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처벌의 수위를 높이는 일만으로 대형 사건이나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아무리 처벌의 수위를 높여도 흉악범은 계속 출현하고, 관리부실로 인한 사고도 제발 한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막기 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조치는 예방적 차원의 교육을 강화해 사회 전체의 의식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래서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구성원은 법정 의무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각종 교육을 받도록 법제화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후 ‘안전사고 예방 교육’을 법제화했고, 대한항공 땅콩회항사건과 위 디스크 사주의 패악질 사건 발생 후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지정했다. 성추행과 성폭력 관련 미투사건이 꼬리를 문 후에는 ‘성희롱 예방 교육’이 의무교육 대상에 포함됐다. 이밖에 ‘개인정보 보호’, ‘퇴직연금’ ‘장애인 인식개선’ 등의 항목이 법정 의무교육으로 지정됐다. 사기업 관계자는 연중 5가지를 의무화했고, 공공부문 종사자는 여기에 몇 가지를 추가해 10종류 남짓한 의무교육을 이수하도록 했다.

법정 의무교육이 시행된 후 사회 전반의 분야별 의식 수준을 빠르게 향상했다. 법정 의무교육 시행 이전과 비교하면 분명 괄목할 성장이다. 하지만 법정 의무교육이 갖는 고질적 문제점의 극복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첫째는 최고책임자나 관리자의 교육 참여가 지극히 부진하다는 점이다. 정작 조직의 변화를 위해 가장 모범적으로 교육에 참여해야 할 대상은 최고책임자와 관리자 그룹이지만 교육 현장에는 대부분 하위직뿐이다. 가장 큰 문제점이다. 경영주와 관리자가 교육에 참여하지 않으면 교육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한 가지 문제점은 상당수 교육이 집합교육 형태가 아닌 온라인교육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실시간 언택트 교육은 그나마 참여도와 집중도가 낫지만 원하는 시간에 사이트에 접속해 동영상을 시청하는 형태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다. 교육 영상을 구동해놓고 실제 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채 다른 일을 하면서 교육시간만 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효과 없는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인 교육 효과 극대화를 통한 의식개선을 위해 모든 법정 의무교육은 집합교육 형태로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실효적 교육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