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행정수도 이어 대전 과학수도, 중대 ‘위기’ 직면
해수부 부산 이전 논란 속 항우연·천문연 사천 이전 법안 발의성일종·박덕흠·엄태영 등 충청권 의원 3명 포함 국민의힘 추진
2025-06-18 최일 기자
[충청신문=대전] 최일 기자 = 국가균형발전이란 대의(大義) 아래 ‘행정수도’ 완성을 목표로 하는 세종과 ‘과학수도’를 지향하는 대전이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경남 사천·남해·하동이 지역구인 서천호 의원을 대표발의자로 국민의힘 의원 18명이 항우연과 천문연을 사천 우주항공청 인근으로 이전하는 내용을 담은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성일종(충남 서산·태안), 박덕흠(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 엄태영(충북 제천·단양) 등 충청권 의원 3명도 공동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이번 법 개정안을 제안한 데 대해 “세계 5대 우주강국이란 목표를 두고 우주항공청이 설립되는 등 우주항공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매우 높은 상황에 우주항공산업 성공과 발전을 위해선 선진국처럼 우주항공청 인근에 ‘우주항공복합도시’를 건설, 연구개발(R&D)과 산업기능을 갖춘 정주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주항공기술 연구개발 관련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우주항공청이 소재한 사천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둘 필요가 있다”며 “항우연과 천문연 등 우주항공청 소관 출연연을 사천에 위치하도록 해 우주항공청과 연구기관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우주항공기술 연구개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우연·천문연을 사천으로 옮기려는 계획은 과학수도 대전의 핵심기지 역할을 하는 대덕특구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국민의힘이 단 한 명의 지역구 의원도 없는 대전(7석) 민심을 의식하지 않고 밀어붙이려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이 해수부 부산 이전을 추진하는 데 대해 “세종의 행정기능을 무너뜨리는 결정이며, 균형발전이 아닌 기능 분열”이라며 “해수부조차 못 지키는 충청권 민주당 인사들이 어떻게 행정수도 완성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공세를 펴던 국민의힘 대전시당으로선 항우연·천문연 사천 이전론이 불거지며 수세에 몰리게 됐다.
민주당 대전시당은 즉각 ‘국가 우주역량을 훼손하려는 국민의힘을 규탄한다’라는 논평을 내 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항우연·천문연 사천 이전 법안은 국가 우주산업의 미래와 전략을 외면한 채 특정 지역의 이익만을 고려한 지역이기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 발전은 고려하지 않고 정략적 이익을 앞세운 이런 시도는 대한민국 우주역량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충청지역 국민의힘 의원 3명(성일종·박덕흠·엄태영)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것은 매우 개탄스러운 일로 과학수도 대전을 중심으로 충청이 쌓아온 우주항공 역량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이며 국가 전체의 우주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데 일조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지난해 국회 동의 없이 항우연·천문연 본원을 이전할 수 없도록 명시한 ‘우주항공청 설치·운영에 관한 특별법’,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을 마련해 법제화한 건 우주정책의 일관성과 국가적 균형을 지키기 위한 책임 있는 조치였다. ‘연구개발은 대전, 산업·생산은 사천, 발사거점은 고흥’이라는 기능 중심의 3각 우주산업 클러스터 체계를 무너뜨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항우연 연구원들은 “지역이기주의적이고 비상식적인 법 개정안을 즉각 폐기하라”며 사천에 소재한 우주항공청의 세종 이전을 요구하며 공분을 표출했다.
전국과학기술노조 항우연지부는 성명을 통해 “우주항공청 직원들과 업계 관계자들조차 현재 우주청 입지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업무 효율을 낮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주청으로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문제지만 5급 선임연구원을 채용하는 데 지원자 대부분이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들일 정도로 전문가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항우연노조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본부는 워싱턴에 있고, 러시아의 로스코스모스는 모스크바에, 중국 항천공사는 베이징에,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도 도쿄 바로 옆 위성도시에 있다. 대부분 수도나 국제적인 대도시에 자리 잡는 것이 글로벌 표준”이라며 “글로벌 우주항공복합도시를 건설해야 한다면 사천이 아니라 당연히 대전이나 그 인근에 건설해야 하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갈수록 치열해지는 우주 패권 다툼과 글로벌 경쟁 속에 지역이기주의적 법안은 우리나라 우주개발과 우주국방력을 저해할 뿐”이라며 “우주항공청을 ‘우주항공처’로 승격시키고, 항우연·천문연이 위치한 대전 인근 행정수도 세종으로 옮겨와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