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유행가 가사처럼

정기룡 대전시재향경우회장·행정학 박사

2025-09-02     충청신문

유행가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다. 특정 시기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노래다. 그것은 그저 흥얼거리는 음률이 아닌 삶과 감정이 녹아든 이야기이며, 그 안에 웃음과 눈물, 기쁨과 위로가 담겨 있다. 특히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 상황 속에서 우리는 유행가의 힘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 들려오는 가사는 마치 내 이야기를 대신하는 듯했다. 그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 한 줄이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뭉클하게 마음을 두드렸다.

노래 ‘그대 그리고 나’처럼 이 세상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너’와 ‘나’ 사이에 놓인 쉼표 하나에도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인생의 풍경은 다르게 그려진다. 나만 생각하며 살던 삶에서 ‘우리’를 돌아보는 순간, 인생은 보다 따뜻해지고 깊어진다.

대전 호수돈여고 정문 옆에는 ‘남을 위해 살자’라는 문구가 있다. 오늘날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그 속엔 진정한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지우면 님이 된다’는 표현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를 배려할 때 진정한 삶의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세상의 중심을 ‘나’로 고정하지만, 결국 삶의 가치는 남을 위한 삶’에서 비롯된다.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나는 동료들의 생일마다 손편지와 떡을 선물로 준비했다. 작은 정성이었지만 마음을 담았다. 지금도 경로당 회장을 맡아 회원들의 생일을 챙기며 메시지를 전한다. 그들이 보내오는 “감사하다”는 짧은 답장은 되려 나에게 더 큰 기쁨을 안겨준다. 주는 마음이 결국 받는 마음보다 더 크다는 것을,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배웠다.

현직에 있을 때 ‘우체통’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매주 월요일마다 동료들에게 보냈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었다. 가족 이야기, 취미생활, 동료들의 미담 등을 담아 서로의 삶을 나눴다. 그렇게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 모여 결국 ‘퇴근 후 2시간’이란 책이 됐다. 삶을 나누는 일은 곧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평범한 유행가 가사 한 줄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겼던가.

퇴직 이후의 시간은 내게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간,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늘 시간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며 산다. 내 곁에 있는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혼자가 된다. 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지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고대 로마에선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 노예들이 행렬 뒤에서 외쳤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언젠가 너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 말은 교만하지 말고 늘 겸손하라는 의미다. 삶은 그렇게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을 더 소중히 살아야 한다.

또 다른 유행가 가사는 말한다. ‘백년도 못 사는데 천년을 살 것처럼 살지 말라.’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래서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적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부딪히며 길이 만들어진다. 힘든 지금은 더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어느 노랫말은 이렇게 노래한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비록 지금 가진 것이 많지 않더라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지금까지 누려온 것들을 헤아려보자.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잃지 말자. 지금 이 순간,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시간을 재촉한다.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이 세상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들, 함께 하는 하루하루, 그 속에 진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어느 멋진 날, 내가 닮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마음속에 풍금 같은 맑은 소리를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이 아닐까.

9월, 더 맑고 따뜻한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길, 그래서 인생이란 행가의 한 소절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길 조용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