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오페라단, 37년 전통이 빚어낸 무대… 오페라 나비부인

2025-09-17     김해인 기자
▲ 21년 오페라 박쥐 (사진=대전오페라단 제공)

◎대전오페라단, 지역을 지켜온 오페라의 불씨

1988년 창단된 대전오페라단은 37년 동안 대전 공연예술계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국공립 단체가 아닌 민간 오페라단으로, 지역 성악가와 스태프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무대를 이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거대한 무대 장치나 충분한 지원은 없었지만, ‘대전에도 오페라를 뿌리내리자’는 의지가 공연을 가능하게 했다. 

그 꾸준한 노력이 쌓여 오늘날 대전오페라단은 지역 공연예술사 속에서 오페라의 불씨를 지켜온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23년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사진=대전오페라단 제공)

그동안 '라 트라비아타', '라 보엠', '카르멘' 등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은 물론 창작 오페라에도 도전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오케스트라, 합창, 무대 미술, 의상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함께하며 지역 예술 생태계를 순환시키는 데 기여했다. 단순히 한 편의 공연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기반 예술인들이 경험을 쌓고 성장하는 장을 제공해 온 셈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전오페라단은 ‘한 도시의 오페라단’을 넘어 지역 문화 발전과 예술 교육에도 기여해 온 기관으로 평가된다.

23년 오페라 팔리아치 (사진=대전오페라단 제공)

특히 꾸준히 무대를 이어온 전통은 “대전에도 수준 높은 오페라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며, 후학 양성과 예술적 자부심을 동시에 키워왔다.

대전 오페라단 나비부인 (사진=대전오페라단 제공)

◎푸치니의 걸작, 나비부인

지난 8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막을 내린 <나비부인>은 대전오페라단의 정체성을 보여준 무대였다. 푸치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일본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순수한 사랑을 바친 게이샤 초초상과 그녀를 떠난 미 해군 장교 핑커톤의 비극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비부인 의상 디자인 컷, 왼쪽부터 초초상, 게이샤, 야마도리, 핑커턴 (대전오페라단 제공)

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는 서사 위에 푸치니 특유의 서정적 선율과 극적인 전개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 무대에는 약 3천 명의 관객이 찾으며 대전 시민들의 오페라 향유 욕구를 확인시켰다. 공연장은 시작 전부터 긴장과 기대감이 교차했고, 막이 오르자 객석은 숨죽인 채 무대에 집중했다. 배우들의 목소리와 섬세한 감정 표현은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렸고,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진 장면에서는 객석 전체가 압도당하는 듯한 공기를 만들어냈다.

나비부인 연습사진 (사진=대전오페라단 제공)

긴 러닝타임에도 흔들림 없이 이어진 몰입은 이번 무대가 지역 문화계에 남긴 울림을 분명히 보여줬다. 공연이 끝난 뒤 쏟아진 기립박수는 대전에서 오페라 무대를 기다려온 시민들의 열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무대를 빠져나오며 관객들이 “다음 공연도 기대된다”고 입을 모았다는 점에서, 이번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지역 문화 수요를 확인한 자리가 되기도 했다.


나비부인 무대디자인 1막 결혼식 (대전오페라단 제공)

◎무대의 완성도를 높인 협력

이번 공연은 성악가들의 역량뿐 아니라 무대 연출, 조명, 분장, 의상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협력이 돋보였다. 화려한 장식에 의존하기보다는 인물의 감정과 드라마 전개에 초점을 맞춘 연출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단순한 시각적 볼거리보다 음악적 호소력과 극적 진정성을 중시한 이번 무대는, 대전오페라단이 지향하는 방향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다.

나비부인 연습사진 (사진=대전오페라단 제공)

무대 뒤 스태프들의 세밀한 작업도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조명은 인물의 감정을 따라 미묘하게 변주됐고, 의상과 분장은 등장인물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안정된 호흡으로 극의 흐름을 지탱하며 장면마다 긴장과 완급을 조율했다.

특히 해외에서 활동 중인 성악가와 대전 출신 성악가가 한 무대에 올라 균형을 이룬 점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신예 성악가들에게는 성장의 기회를, 시민들에게는 수준 높은 무대를 경험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런 구조가 앞으로도 대전오페라단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공연 현장에서 “대전 출신 성악가가 이렇게 활약하는 걸 보니 자랑스럽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24년 오페라 이상의 날개 (사진=대전오페라단 제공)

◎대전오페라단의 의미와 비전

<나비부인>은 단순한 한 편의 공연이 아니라, 대전오페라단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방향을 보여준 무대였다. 긴 역사 속에서 쌓아온 경험과 협력의 힘은 이번 공연을 통해 다시 확인됐다.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만들어낸 무대, 시민들이 함께 호흡하며 채운 객석은 오페라가 대전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했다.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 등을 통해 ‘모두가 함께 누리는 오페라단’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대전을 기반으로 한국 오페라의 거점으로 성장하고, 세계 무대와도 교류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