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으로] 새 소리 박물관
김종윤 시인
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새들이 모두 어디로 날아갔을까? 이른 아침, 이슬 머금은 정원을 지나 울타리 쪽으로 가 봐도 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울타리 밖, 실개천 가에서 터 잡은 지 오래된 묵은 매실나무가 조용하다. 그 옆의 아름드리 양버즘나무도, 양버즘나무와 키를 맞추고 있는 왕버드나무도 조용하다.
아침부터 푸른 장막 속에서 노래하던 휘파람새와 되지빠귀는 어디로 갔을까? 아침 공기를 깨트리는 오색 딱따구리와 청딱따구리는 어디로 갔을까? 밀화부리는 왜 찾아오지 않는 걸까? 새가 노래하지 않는 침산의 아침은 적막하다.
시내 생활을 정리하고 보문산 옆으로 이사 와 세 번째 여름을 나고 있다.
문화동과 복수동 등 시내에서 10분 거리의 전원이지만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고 봄부터 여름까지 다양한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습을 감춘 채 초록의 장막 속에서 들려주는 새 소리들은 전원생활을 만끽하기 충분하다.
침산동의 봄은 꾀꼬리 소리로 시작한다.
꾀꼬리는 매년 4월 중순이면 암수 한 쌍이 침산에 찾아와 높은 나무우듬지에 집을 짓는다. 사람을 두려워해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나 이른 아침이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나르며 샛노란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꾀꼬리 소리는 매우 아름다워서 맑고 고운 소리의 대명사로 32가지의 소리 굴림이 있다고 한다.
해거름 녘이 되면 뒷산 침산에서 검은등뻐꾸기가 밤늦도록 운다.
검은등뻐꾸기는 그리 드물지 않은 여름 철새다. 주로 인도와 동남아 등지에서 겨울을 나고 이 땅에는 5월 중순부터 모습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흔한 뻐꾸기와 외형이 비슷하고 다른 새의 둥지에 탁란한다.
검은등뻐꾸기 우는 소리는 2음절로 우는 뻐꾸기 소리와 완전히 다르다.
분명한 4음절로 우는데, 계이름으로 치자면 ‘미-레-레-시’ 정도가 된다. 그런데 이 4음절의 소리가 듣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들린다고 해서 ‘홀딱 벗고 새’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첫차 타고, 막차 타고”, “머리 깎고, 머리 깎고”처럼 사람의 감정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고 한다.
시인 임보는 검은등뻐꾸기 울음을 이렇게 노래했다.
네 마디로 우는 저 새의 울음소리 / 사람의 음성과는 달리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되질 않아 문자로 옮길 수가 없다 / 흔히 /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운다지만 / 어찌 들으면 / “첫차 타고, 막차 타고”하는 것도 같고 / “언짢다고, 괜찮다고” 하는 것도 같고/ 듣는 이에 따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 만어(萬語)를 품고 있는 저 무궁설법 / 누가 따라잡을 수 있단 말인가
침산에 어둠이 짙어지면 수리부엉이가 운다.
금산 복수면에서 내려오는 유등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청소년수련원으로 드는 교량이 나타나는데, 수리부엉이는 이 교량의 양쪽 절벽 어딘가 어둡고 깊은 곳에서 운다.
야행성 맹금류인 수리부엉이는 크고 위엄 있는 외형을 갖고 있다.
특히 강렬한 눈빛은 숲속의 제왕이라는 이름에 걸맞다. 울음소리도 무척 인상적이다. 어두운 숲속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소리는 사람의 혼을 깨우는 듯해서 전설이나 민담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어릴 때는 마당 끝에 있는 화장실에 가기 무서운 소리였으나 나이를 먹고 보니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소리로 들린다.
새 소리는 듣는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키고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영국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새를 보거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황은 정신건강에 매우 유의미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새 소리는 우리와 자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도시 생활하는 사람들이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은 밤낮없이 각종 기계음과 생활 소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심신이 피곤하고 지칠 때 가까운 숲이나 공원으로 나가보자. 그곳에 새 소리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서 새의 지저귐을 듣는 것은 자연을 통해 우리를 치유하는 일이고, 이는 우리가 자연과 공존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