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목소리 좀 낮추자

김일호 白樹文學會長

2025-10-26     충청신문
▲ 김일호 白樹文學會長
언제쯤 올까 싶던 가을이 왔다. 하늘은 높고 푸르러 두둥실 떠 있는 구름이 더 희고 평화롭게 보인다.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건너 뛰어온 것처럼 때 이른 한기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땀을 머금은 이 땅의 꿈은 익어간다. 샛노랗게 익은 은행이며 감이며 벼 이삭들은 가을 햇살 가득 품고 눈부시도록 빛을 발하고 있다. 성질 급한 잎들은 벌써 새벽바람에 앞서 눕기도 하고, 가벼워진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떨어져 보도 위에 뒹굴고 있다. 그처럼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따른 계절은 조용히 변화하고 있다.

가을 길을 거닐다 보면 어느 계절보다 보고 느끼는 게 많다. 오고 가는 길에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저마다 어깨 위에 올려진 삶의 무게 따라 표정도 다르고 걸음걸이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든 종종 만나는 사람이든 서로 눈빛을 나누고 손 한번 잡아보고, 한두 마디쯤 안부를 묻기도 하는데, 전해오는 어감에 따라 상대의 기분을 짐작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뭐가 그리도 못마땅한지 밑도 끝도 없이 노골적인 표현으로 세상을 향한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마지못한 듯 의례적인 말 한마디 슬그머니 꺼내놓고 사라지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놓이든 할 말은 해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 대화 한마디 없다면 숨을 쉬지 않는 것과 다를 것 없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말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가슴앓이만 하다 보면, 결국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상처로 남을수 밖에 없다. 함께 이웃해 사는 동안 진솔하고 건전한 대화는 서로 신뢰를 쌓게 되고, 같은 하늘 아래 기대어 살 수 있다는 미더운 힘이 되기도 한다.

말도 말 나름이다. 정제되지 않고 마구 퍼붓듯이 쏟아내는 말은 자칫 흉기가 될 수 있다. 본의와 다르게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에 혼자 들어가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사담이든 공적 대화든 주고받는 말이 거칠고 고성에 가깝다면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싸움의 장으로 번질 것이 분명하다. 요즘 국정감사 중계에서 목격한 정치인들의 말싸움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꼭 그렇게 인상을 붉히며 삿대질에 윽박지르듯 토해 내는 고성을 보고 들어야만 하는 국민의 속내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사적 감정을 빼고 목소리 좀 낮추어 진중하게 말하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인가? 어떤 사안이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존중의 언행은 찾아보기 어렵다. 상식을 파괴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연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소란스러운 현실이 민생의 꿈마저 앗아 가는 건 아닌지 뒤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가을이 깊어 간다. 머지않아 다가올 추위를 예비해야 한다. 주렁주렁 열린 감 중에 까치밥 몇 개 남겨 두듯이 서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다. 너와 나, 우리라는 공동체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목소리 좀 낮추고 서로 존중과 사랑으로 행복한 동행을 이어갈 기회의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