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압 극한환경서 새로운 얼음 찾았다…표준연, ‘얼음 XXI’ 세계 최초 규명

새로운 결정화 경로·상온 얼음 발견…우주 생명 탐사·신소재 개발 새 지평

2025-10-27     하서영 기자
▲ 넓은 온도 및 압력 구간에 걸쳐 존재하는 다양한 물과 얼음의 상태도. (사진=표준연 제공)

[충청신문=대전] 하서영 기자 =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상온에서 2만 기압 이상의 초고압 상태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해 21번째 얼음상 ‘얼음 XXI’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표준연은 상온에서 2만 기압이 넘는 초고압 상태의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순간을 마이크로초(μs) 단위로 포착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를 통해 물의 새로운 결정화 경로와 21번째 얼음상 ‘얼음 XXI’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물은 0℃ 이하에서 얼지만 압력이 높아질 경우 상온이나 고온에서도 얼음이 형성된다. 또, 물은 상온에서 약 9600기압(0.96 GPa) 이상의 압력을 받으면 ‘얼음 VI’로 상전이한다.

이때 물 분자 간의 수소결합 네트워크가 압력과 온도에 따라 복잡하게 재배열되면서 다양한 결정 구조(얼음상)가 나타난다.

한 세기 이상 진행되고 있는 얼음 I부터 얼음 XXI까지 얼음상 발견의 역사. (사진=표준연 제공)

표준연 우주극한측정그룹은 자체 개발한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 셀(dDAC)'을 이용해 상온에서 2만 기압 이상에서도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초과압’ 환경을 구현했다. 이는 기존 결정화 압력의 약 200% 수준이다.

dDAC은 미세 변위제어 장치를 적용해 수십 초가 걸리던 압축 시간을 10밀리초(ms)까지 단축, 기존 장비로는 관찰이 어려웠던 순간의 상전이 과정을 정밀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유럽의 대형 X선 자유전자 레이저 시설 ‘유로피언 XFEL’을 활용해 초과압 상태의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을 마이크로초 단위로 실시간 관측했다.

그 결과, 기존에 보고된 적 없는 5가지 이상의 새로운 결정화 경로를 발견하고 그 중 새로운 결정 구조인 ‘얼음 XXI(Ice XXI)’를 규명했다.

DAC 내 얼음 XXI 단결정 이미지와 단결정 회젤 패턴. (사진=표준연 제공)

새롭게 발견된 얼음 XXI는 다른 얼음상보다 결정 구조의 단위포(Unit Cell)가 훨씬 크고 바닥면의 두 변 길이가 같은 납작한 직육면체 형태의 격자 구조를 가진다. 연구진은 물 분자의 배열 위치를 분석해 얼음 XXI의 구조를 완전히 밝혀냈다.

이윤희 책임연구원은 “얼음 XXI의 밀도는 목성과 토성 등 거대 가스 행성 위성 내부의 초고압 얼음층과 비슷하다”며 “이번 성과는 우주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근우 책임연구원은 “KRISS가 개발한 dDAC 기술과 XFEL을 결합해 기존 실험 장비로는 불가능했던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다”며 “극한환경 연구가 물질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