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 주말여행] 밤의 별부터 호숫길 단풍까지, 충청의 가을을 걷다

2025-11-06     김해인 기자

바람이 한층 가벼워지고 햇살은 부드러워졌다. 낮에는 낙엽이 발끝에 쌓이고, 밤에는 불빛이 길 위를 덮는다. 도심의 수목원에서 시작해 강변 습지, 해안의 바다, 그리고 호숫길로 이어지는 길. 멀리 가지 않아도 충청의 가을은 충분히 가까이 있었다.

한빛탑을 배경으로 붉은 단풍을 담고, 새벽 안개 속 철새를 바라보며, 서해의 노을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으로 호수 위 단풍길을 천천히 걸었다. 축제가 끝나도 계절은 여전히 풍요롭다. 이번 주말, 빛과 잎, 물과 바람이 어우러진 그 길을 걸어보자.

▲ 대전 한밭수목원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대전 한밭수목원 단풍길

도심 속 공원이 이렇게 다채로울 줄 몰랐다. 한밭수목원에는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층층이 내려앉았다. 유리온실을 중심으로 이어진 데크길은 물가를 따라 완만히 흐른다. 연못 위로 비친 정자와 도시의 불빛이 한 장의 그림처럼 겹친다. 오후가 되면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고, 수목원의 색은 더욱 깊어진다.

아이 손을 잡은 가족, 카메라를 든 시민들이 발걸음을 맞추며 산책을 즐긴다. 온실 앞 벤치에 앉아 있으면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도심의 시간조차 느리게 흘러간다. 저녁 무렵, 분수 조명이 켜지면 수목원은 또 다른 얼굴로 변한다. 유리온실을 비추는 불빛이 연못 위에 반사되고, 붉은 단풍과 도시의 불빛이 하나로 이어진다.

금강 철새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세종 합강습지 철새 관찰

금강과 미호강이 만나는 합강습지는 지금 철새들의 쉼터다. 해 질 무렵, 하늘이 붉게 번지면 수천 마리 새가 한꺼번에 비상한다. 군무처럼 이어지는 날개짓이 하늘에 거대한 그림을 남긴다. 전망데크에서는 망원렌즈 없이도 그 움직임을 충분히 볼 수 있다.

강 위에는 잔잔한 물결이 퍼지고, 갈대밭 사이로 노을빛이 스며든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잠시 모든 소리가 멎는 순간, 도심의 시간은 멀어진다. 그 고요함이 합강습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른 아침에는 물안개가 피어올라 하늘과 강이 맞닿은 듯 흐릿하게 번진다. 낮에는 겨울을 준비하는 철새들의 무리가 머물고, 해 질 녘에는 붉은 하늘과 어우러져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태안 안면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충남 태안 안면도 가을 바다

가을의 안면도는 향과 빛이 공존한다. 해안을 따라 솔향이 스치고, 붉은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해변을 걷는 가족들의 그림자가 모래 위로 길게 늘어진다. 꽃지해변의 일몰은 계절의 마지막 장면을 품은 듯 붉게 번지고, 두 개의 할미·할아비 바위가 바다 위에서 서로를 향해 선다.

곰섬과 방포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다. 서해의 공기는 짙고 맑다. 해 질 무렵, 바다 위로 남은 햇살이 번지면 하루는 천천히 접히고, 가을의 끝이 완성된다. 노을이 지고 난 뒤에도 해변에는 잔빛이 남는다.

모래 위를 걸을 때마다 파도 소리가 낮게 깔리고, 등대 불빛이 천천히 켜진다. 바다의 온도는 차갑지만, 그 풍경은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는다.

괴산 산막이옛길 (사진=마을갤러리)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 단풍길

괴산의 산막이옛길은 호수 위의 길이다. 대청호를 따라 이어지는 데크길에서는 단풍과 물빛이 동시에 깊어진다. 초입에는 학과 거북 모양의 목조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그 너머로 잔잔한 호수가 펼쳐진다.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물결은 그 빛을 받아 잔잔히 흔들린다. 중간 전망대에 서면 호수와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후가 되면 햇살이 기울며 물빛이 황금색으로 변한다.

바람이 잦아들면 산새 소리와 사람의 발소리만 남는다. 단풍과 호수가 만나 만든 고요함, 그 평화로운 풍경이 가을의 마지막을 채운다. 때로는 산책로 옆 벤치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을 마주친다. 낙엽이 떠다니는 호수를 바라보는 그 뒷모습이 이 계절의 속도를 대신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