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겨울로 가는 길
김일호 白樹文學會長
2025-11-23 충청신문
위정자들의 알량한 눈속임을 선량한 국민이 모를 리 없다. 허덕이는 삶에 지쳐 차라리 입 닫고 사는 게 낫겠다는 자포자기에서 모른 척 할 뿐이다. 누가 옳고 누가 옳지 않은 건지,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공정과 공의와 상식과 양심을 다수결로 정할 수 없지만, 소리 없이 흘러가는 밑바닥 민심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높은 자리에 앉았거나 많이 가졌다고 해서, 아니면 지식이 풍부하거나 말을 잘한다고 하는 그 사람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기본은 서로 다른 것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하며, 조금씩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상호 보완을 통해 국가나 사회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권력도, 명예도, 사랑도, 사람 목숨도 유한하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꿈을 꾸어도 길어야 백 년 인생이다. 그 백 년을 나누어 생각해보면 배우고 일하며, 국가와 사회와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그다음 좀 살만해지면 늙고 병들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 그 길은 부인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신이 정해준 인생 항로이다. 그러함에도 죽기 살기로 자신만의 권력을 탐하거나 부와 명예를 쌓기 위하여 도덕이니 윤리니 따져 볼 것도 없이 불법과 반칙을 일삼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을 독차지할 듯이 날뛰고 있는 오늘을 부인할 수 없다.
겨울로 가는 길, 그 길이 끝이 아니다. 절망적일 것 없다. 끝내 살아남아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봄날은 약속대로 찾아온다. 꿈이 사라지고 그 무엇도 기다려 볼 여력조차 없다면 산목숨이 아니다. 날마다 보고 느끼고 듣는 이야기들이 불길하지만, 겨울 길 뜨락에 살포시 내려앉아 빛나는 햇살 만날 수 있듯이, 좋은 날 좋은 소식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만이 힘이 될 것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내가 아닌 우리라는 넓은 가슴에서 솟아 나오는 따듯한 호흡이 추위를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누구를 비판 비난하기에 앞서 맑은 거울 앞에 선 듯 나부터 옳고 바르게 살고자 하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의 겨울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