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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생겨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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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1.22 18:5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정희/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오늘 아침 모하비 사막에 핀 양귀비꽃 사진을 보았습니다. 모래먼지 날리는 벌판에 꽃무늬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합니다. 풀 한포기 없을 것 같은 사막에 야생 양귀비 보호구역으로 제정될 만치 고운 꽃이 피고 그것을 찍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정원사도 그렇게는 다듬지 못할 것 같은 신비감에 추위도 잠깐 잊었습니다. 사막은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지요. 숲이 있나 초원이 있나 칙칙한 모래언덕과 바위산뿐인데 야생화가 그리 곱다니, 겉보기보다 속이 꽉 찬 게 있는 걸까요.

얼마 전 이웃집에서 비지장을 먹었습니다. 메주처럼 띄워서 끓였다는데 맛이 제법입니다. 어릴 때 같으면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예요. 후식으로는 쑥개떡을 내왔고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필 개떡이냐고 먹지 않은 음식인데 비로소 맛을 알았습니다. 4월 초 갓 올라온 쑥을 삶아 쌀가루에 반죽을 해서 만들거나 냉장고에 얼렸다가 겨울에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식어야 쫄깃하다는 사람도 있고 저 같은 경우 뜨거울 때가 좋습니다. 어쨌든 그냥 봄이 지나면 서운할 만치 자주 해 먹었고 그럴 때마다 이름을 핑계로 먹지 않은 게 후회될 정도입니다. 개떡이라고 맛없는 건 아니죠. 옛날에는 돼지 혹은 바우라고 하는 이름이 흔했지 않습니까. 귀한 자식일수록 천하게 지어 부르는 것도 이름이 예쁘면 탈이 생긴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먹을 게 귀했던 시절 대충 만들었다고 개떡으로 표현했을 텐데 맛을 보고 나니 정갈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아침에는 시래기 된장국을 먹었습니다. 먼저 된장을 안쳐 은근한 불에 달입니다. 그 다음 깨끗하게 손질한 시래기에 콩가루를 묻혀 한소끔 끓입니다. 된장과 콩가루의 구수한 맛이 참 독특한데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쓰레기와 이름이 비슷한 것 때문이고 무를 다듬고 남은 무청을 지푸라기로 엮어 다는 것을 보고는 더 그랬습니다. 그렇게 최근까지 먹지 않은 걸 보면 유별났나 봅니다. 겨울이면 잘 마른 시래기를 삶아 된장국을 끓여도 좋고 정월 대보름날 들깨가루에 무친 시래기나물도 일품입니다. 이름이 별나다고 생각한 것에 비하면 놀랄 일이죠. 이름이든 생김이든 못난 것도 때로는 고유의 가치가 상승되는 걸까요.

못 생긴 거라면 메주를 빼놓을 수 없겠죠. 발효가 잘 될수록 더더욱 흉합니다. 개떡과 시래기가 이름이 거북했다면 메주는 생김 때문이었죠. 초겨울 콩을 삶아서 쳇바퀴에 다듬을 때는 그런대로 빤빤합니다. 그러다가 장을 담글 때 보면 쩍쩍 갈라지고 곰팡이로 뒤덮여서 주물러 놓은 메주덩어리라는 말이 실감나지만 그로써 1년 먹을 장이 되는 걸 생각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재료도 재료지만 그릇에도 투박한 이름이 많더군요. 우선 된장찌개를 끓이는 뚝배기가 있는데 잘 생기지는 않았어도 찌개 등이 보글보글 끓을 때 보면 절로 군침이 돕니다. 달걀찜도 은근한 불에 익으므로 맛이 각별합니다. 생선을 조릴 때도 뚝배기에 안치던 친정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바닥에 깐 무도 알맞게 졸아서 먹기가 부드러웠죠. 투박해도 그릇이 두꺼워 찌개와 조림 등 다용도로 쓰이는 걸 보면 뚝배기보다 장맛입니다. 그 외에 소댕이니 번철이니 해서 전을 부치는 도구도 있습니다.

소댕은 솥뚜껑을 말하는데 명절 때마다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화덕에 걸고 빈대떡을 부치는 걸 보고 어린 저는 먹기도 전에 달아났습니다. 시꺼먼 뚜껑은 물론이고 빈대떡은 빈대가 떠오르는 통에 질색이었습니다. 잘 먹지 않은 것도 이름 때문인 경우가 많았고 그것을 파악한 어머니는 빈대떡이 아닌 전야를 따로 주셨습니다. 그렇게 이름이든 생김이든 투박한 것을 싫어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이름의 음식이 구미에 당깁니다.

못생겼다고 생각한 외사촌 언니가 떠오릅니다. 외삼촌 두 분은 제법 인물가였고 사촌들도 밉지는 않은데 언니가 유독 인물이 없습니다. 인물 보고 사는 건 아니지만 언니라고 소개하기가 거북할 정도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인간성이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인정 많고 남의 어려움 헤아릴 줄 알고 살림도 야무져서 냉장고마다 웰빙 식품입니다. 봄이면 송화다식을 만들고 쑥을 뜯어 냉동실에 넣어 두고 일 년 내 먹습니다. 가을에는 도토리 앙금을 내서 나눠 줍니다. 술안주에 좋다고 메뚜기를 잡고 곶감을 만드는 등 깨소금 맛 나게 산다니까요.

이쯤 나오면 살림이나 하는 줄 여기겠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속에서 바지런을 떠는 겁니다. 솜씨 좋고 마음 착하고 무엇 하나 버릴 게 없이 참배 같은 언니였는데 요즈음에는 말도 어눌하고 이상해졌습니다. 뒤뚱뒤뚱 걷는 건 물론이고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기 때문에 가족들의 고충이 여간 아니지만 그닐그닐하면서도 집안을 잘 건사해 나갔습니다. 거동은 불편해도 야무지고 똑똑한 성품은 여전해서 타격이 별로 없었던 거죠.

농사일을 줄이고 나니 신수도 좋아졌습니다. 일에 시달려 못 생긴 것처럼 보일 때도 불평이 없었지요. 불평은커녕 일가친척과 이웃을 위해 사느라고 머리 한번 제대로 손질하지 못한 겁니다. 흔한 성형수술도 받지 않더군요. 못 생긴 게 본인 책임은 아니어도 콤플렉스 때문에 받는 경향이고 언니도 여자인 만큼 생각이 있었을 텐데 그보다는 품성을 갈고 닦는 데 주력했나봅니다. 언젠가 집안 결혼식에서 본, 제법 예쁘장했던 걸 생각하면 잘 가꾸면 괜찮을 텐데 싶어 아쉬웠지만 언니로서는 중요한 게 따로 있었던 거죠.

거실에 화초가 몇 그루 있습니다. 어느 날 독특한 향기가 진동해서 보니 구석의 동양란 한 그루가 꽃을 피웠습니다. 장식장의 양란도 꽃은 피웠으나 향기는 미미합니다. 참 예쁜데도 향기는 별로인 것과 향기가 나기 전에는 잘 띄지도 않던 차이점을 봅니다. 양란을 무시하기보다는 볼품없는 꽃 때문에 향기가 에일 동양란이 안됐습니다. 나중에 보니 엉성한 대로 꽃대가 올라왔고 송이도 벌어졌건만 작고 희미해서 눈에 띄지 않은 겁니다.

우리도 속은 어쨌든 눈을 가리고 현혹하는 것에 치중합니다. 겉도 중요하지만 내실을 지키고 보완하는 역할인데 바뀌었습니다. 남을 평할 때도 꽉 찬 내실을 봐야만 상대방 역시 나를 볼 때 품성에 치중하겠지요. 꽃잎이 화려한 양란도 필요한 게 그로써 생김보다 향기가 뛰어난 동양란 특유의 자존심도 높이게 됩니다. 내 삶의 잣대 역시 그럴 듯한 도금문화보다는 속내에 치중해야겠지요. 뜻밖에 향기는 미미했던 양란에서 하나가 뛰어나면 나머지는 수수할 수밖에 없는 섭리를 봅니다. 내실이 중요하다면 예쁜 게 전부는 아니죠. 언니보다는 낫다 해도 모난 얼굴이 둥그스름 못 생겨지는 게 진국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후덕한 언니에게는 어림없지만 외사촌 언니가 아닙니까. 외탁을 했다면 닮았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이정희/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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