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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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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4.30 19: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무장아찌를 담았다. 겨우내 먹던 동치미를 정리할 때는 여남은 개씩 남게 되고 잘 헹궈서 고추장이나 된장에 박는다. 여름에 꺼내면 발그스름 물이 들어서 보기에도 맛깔스러운 장아찌가 된다. 채 썰어서 통깨와 참기름만 넣어도 칼칼하니 맛있다. 너무 더워서 밥도 먹기 싫을 때 물 말은 찬밥에 얹어 먹으면 삼복더위에 느른해진 몸도 거뜬해진다.

뻐꾸기가 울 무렵에는 마늘종이 나온다. 그걸 뽑아서 소금물에 절인 후 물기를 말려 고추장에 박아 두고 조금씩 꺼내 무친다. 마늘을 캐고 나면 금방 7월이고 오이가 성시를 이룬다. 지금은 봄에도 흔하지만 진짜 맛난 건 된볕에 쓴맛이 나는, 특별히 대가리 쓴 오이다.

두 접 세 접 사다가 소금물을 끓여 붓는다. 워낙 큰 독이라 대강 먹은 뒤 헹굴 때는 반 광주리씩 남는 게 보통이고 그걸 고추장에 넣는다. 얼마 후에는 놀빛마냥 결이 삭는다. 동치미도 발그름하지만 몸 자체가 투명한 오이는 더더욱 발긋하게 보인다.

5월에는 더덕으로 할 때가 있다. 갓 결혼하던 해 한번은 아버님이 밭둑에 더덕을 심으셨다. 덩굴을 올린 뒤 한 3년 지나자 오이처럼 굵어졌고 뽀얗게 손질해서 고추장에 넣었다.

고추장이 묻은 채로 참기름에만 무쳐도 고기반찬 밀어 놓고 먹을 정도로 맛있다. 산 더덕만은 못해도 직접 씨를 뿌리면서 가꿨고 보리쌀을 띄워 만든 고추장도 특유의 맛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 외에 깻잎도 장아찌로 적절한 재료다. 6월에 깻모를 붓고 7월에는 모종을 한다. 물을 한 바가지씩 붓고 모종을 해도 된볕에 너울을 쓰지만 웬만치 땅내를 맡은 뒤에는 금방 올라왔다.

본밭에서 깻모가 자랄 동안 남은 깻모는 무치거나 양념을 한 뒤 졸이기도 하는데 더러는 묶음으로 따서 된장에 박는다. 볕이 뜨거운 날 열어 보면 황금빛으로 잘 삭은 깻잎이 된볕에 무슨 보석마냥 반짝거렸고 그냥 꺼내서 찬밥에 싸 먹으면 제법 맛깔스러웠다.

고추장이나 된장은 물론 간장으로 담그기도 한다. 흔히 먹는 양파나 깻잎 풋고추도 그런 식이다. 마늘종은 고추장에 박고 통마늘은 주로 간장이다. 마늘종과는 달리 마늘은 양념이라 찧어 먹기 바쁘고 장아찌로는 잘 담그지 않으나 뽀얗게 까서 넣으면 검은 콩을 담근 듯 먹음직스러운 색깔로 된다.

그럴 때는 간장을 팔팔 끓이고 생강과 마늘 쪽파로 향을 가미하기도 한다. 푹 잠기지 않으면 들뜨기 쉽고 많이 넣다 보면 장아찌라 해도 너무 짜다.

방법이라면 7부 정도 잠기게 한 뒤 위아래를 바꿔 놓는 것이다. 몇 번 뒤적인 뒤 간이 배면 푹 잠기지 않을 때의 군내도 없어진다. 적당량의 물을 섞는 것도 싱겁게 하는 방법이다.

단지 갱물이 들어간 까닭에 팔팔 끓인다 해도 마늘이나 생강 등의 양념과 식초 혹은 매실도 함께 넣어야 탈이 없다. 특유의 향내가 묵혀 두고 먹는 장아찌 반찬의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요즈음 짠 음식이 건강에 나쁘다고 싱겁게 먹는 경향이나 염분이 많이 배출될 때는 먹어주는 게 좋다. 땀이 나지 않는 겨울에는 장아찌를 먹으면서까지 보충할 필요가 없으나 탈수되기 쉬운 여름에는 필히 섭취해야 될 음식의 하나다.

아무려나 가을에는 장아찌 먹을 일이 별반 없고 겨울에 접어들면 더더욱 드물어 동치미 항아리가 나는 봄에야 박게 되는데 요즈음 겨울에도 기상천외한 장아찌가 있음을 알았다.

물색없이 싱거운 사람을 고드름장아찌라 하는 것으로, 세상에 고드름을 박을 수 있다면 오리지널 자연산에 그보다 안성맞춤이 없을 테고 발상 또한 해학적이다.

땀을 흘릴 일이 드물다 보니 장아찌 먹을 일도 없고 봄내 여름내 땀을 흘린다는 구실로 장아찌만 먹어온 농투성이가 고드름을 보고는 장아찌 운운하며 짭짤해야 되는 의미를 강조했겠다.

장아찌 박을 재료에 얼마나 고심했으면 고드름을 다 연상했을까, 착상은 좋았다만 녹으면서 싱거워질 거라는 말 그대로 싱거운 발상으로 끝났을 것이다. 더불어 장아찌만큼은 짜야 된다는 반론이 싱겁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우리에게 일부 자극도 주었을 테지.

소금은 나쁘지만 메주로 만든 고추장과 거기 넣은 장아찌의 짠맛은 괜찮다. 당분은 해로워도 곶감의 단맛은 탈이 없는 것과 같다.

옛날과는 달리 푸성귀며 채소가 철철이 나오는 요즈음에는 무의미한 것도 없지는 않다. 장아찌가 물량이 흔할 때 간장을 붓고 파 마늘 등의 양념을 한 거라면 모든 게 흔한 지금으로서는 번거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금방 금방 해 먹는 겉절이 문화가 발달했지만 오랜 날 결이 삭으면서 맛이 드는 장아찌 문화가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된장에 혹은 고추장에서 볼 수 있는, 깻잎과 무의 가지런한 잎맥과 매끈한 결이 선명히 드러났을 때의 무슨 예술품을 대하는 것 같았던 신비감이 까닭 모르게 아쉬워지니 어쩔 수 없는 장아찌 세대였을까.

장아찌는 잠깐 만드는 식품이 아니다. 지금과는 달리 푸성귀가 귀했을 때의 저장식품이고 먹는 동안 느긋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우리 삶도 겉절이 문화의 산뜻한 느낌 위에 장아찌 특유의 진솔한 이미지가 가미되면 훨씬 더 윤택해질 것이다. 그나마 장아찌조차 반찬 가게에서 사 먹는 풍조가 되고 보니 공들여 박는 정성이 아쉽다.

마트에만 가면 채소 등이 많아서 벼락짠지 등의 문화가 발달했고 그래서 너나없이 바쁘게 사는 것 같지만 문제될 건 아니다.

땀을 흘린다는 구실로 장아찌만 먹어온 농투성이가 고드름을 보고 장아찌를 떠올리면서 농한기의 무료함을 달래듯 겉절이 문화에 길들여지는 중에도 가끔은 장아찌를 먹으면서 급하기만 한 기질을 완화시킨다. 음식이 성격을 만드는 제 1의 주범이라면 말이다.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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