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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대전 근대건축물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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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10.03 16:5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유 병 우 ㈜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

대전은 1905년 경부선철도가 개통되고, 1912년 호남선 전통식이 거행되면서 교통도시로 시작했다.

이전에는 넓은 논과 벌에 1985년 동학란 때 우금치전투에서 패한 동학군들이 마지막 진지를 구축하고 전투한 보문산 아래(도청 앞) 버드나무 벌과 늪지에 시신이 널려 있고, 까치 떼들이 무리지어 날라 다니던 황량한 벌판으로 기록된다.

1932년 공주에서 도청이 옮겨오면서 대전역에서 산내 쪽으로 설정되어 있던 도심의 축이 서대전 쪽을 향해 논산, 공주 방향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발달을 하였다.

이렇듯 대전은 철도 교차기점으로 선정 후 성장한 전형적인 근대도시이다. 그래서 당연히 그 당시에 세워진 근대 건축물이 구도심에 즐비하려니 생각하지만 완전히 다른 판이다.

지금처럼 근대 건축물의 사라진 원인은 한국전쟁 때, 임시 수도인 대전을 사수하려다가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하였지만, 이후 인위적으로 부숴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첫째 이유는 대부분 일제 잔재이라는 명분이고, 또한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보존하기에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경제적인 이유이다. 즉 건물주가 보존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물주가 개인인 경우에는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나 관일 경우에는 의지만 있으면 보존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방자치제가 발달하고, 원도심이 개발되는 2000년대 들어 더욱 건축물의 파괴가 잦아졌다. 특히 이를 보존하고, 감독하여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건축사(建築史)로 살펴보면 로마의 폭군 ‘네로’는 도시를 불태워 파괴하면서 즐겼다고 비웃지만, 우리도 1995년 8.15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김영삼 대통령은 애국가 울리면서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의 첨탑을 쇠톱으로 잘라내는 행사를 치렀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기에 국보 1호인 남대문이 화재를 당해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대전도 민선 시장 이후로 살펴보면, 첫 홍선기 시장 때에는 한국은행 대전지점을 건축심의에서 부결시키며 보존하려 하였으나 결국 시공상 문제로 헐렸고, 다음 염홍철 시장 때 이승만 대통령 탄신 80주년 기념 ‘우남도서관’, 대전 최초의 회전무대 시공관이던 ‘중앙극장’, 전후복구자금으로 세운 대전 브루스의 발상지 ‘대전역사’가 헐렸다.

이후 박성효 시장 때는 대흥동 뾰쪽집을 철거하여 길 건너 동네로 옮기는 촌극이 발생하였다. 다시 염시장 임기 초에 산업은행 대전지점을 개인에게 매각하는 것을 조망하다가, 말기에는 영렬탑을 조용히 부숴버린 시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1990년초 대전여중 본관이 훼손되었지만, 전임 홍성기 교육감은 대전여중 강당을 개축하여 ‘대전갤러리’를 개설하고, 삼성초등학교 교사를 ‘대전교육박물관’으로 개관하여 근대건축물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김신호 교육감은 건축계의 원로인 조정환씨의 역작인 ‘대전고등학교 도서관’을 철거한 기록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단체장의 의지가 근대 건축물의 보존에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추억의 장소로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옛 건물들이 기억 속 에는 즐비한데, 대부분 사라졌다. 물론 신도시의 발달은 파괴로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조금씩 나갈 것이다. 그러나 단지 경제적인 이유로 허물어 버린다면, 남아있을 건축물은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2000년대 들면서 철거 된 한국전쟁이후 준공한 한국은행 대전지점, 대전역사와 대전고 도서관은 정말 안타깝다. 옛 건물을 보존하려는 뜻은 공간과 장소성을 확보하여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밝은 미래를 꾸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본이 건축물을 보존하는 것인데, 이제는 경제규모에 맞는 보존의식과 성숙한 시민의식도 절실하다.

과거의 어두운 공간을 없애 버린다고 역사가 뒤 바뀌는 것도 아닌데, 그다지도 철거가 급했는지 알고 싶다. 이제 충남도청의 이전으로 남아있는 도청사와 관사군은 앞으로 어떠한 운명에 놓이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을 해야 되는지 걱정이다.

수십 년 만에 모교를 방문한 일본인 졸업생이 대전여중 강당을 보고 감동하여, 교육감에게 감사전화를 하였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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