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데이’인가 ‘가래떡 데이’인가. 당신은 어느 쪽이신가. 빼빼로 데이는 부산 경남의 여학생들이 날씬한 몸과 긴 다리를 바라는 마음을 길쭉한 과자에 실어 주고받은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과자를 만드는 회사가 ‘데이 마케팅’으로 써먹으면서 확산돼 지금은 연인뿐 아니라 직장동료나 친구, 지인 등 누구에게나 선물하는 날이 됐다. 상혼이 끼어든 게 거슬리긴 하지만 감사를 잊고 사는 세상에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거야 나무랄 일은 아닐 것이다.
▷ 열십(十)에 하나일(一)을 더하면 흙토(土)가 된다. 흙토가 겹치는 날이기에 ‘농업인의 날’이다. ‘11’처럼 벼가 반듯하게 잘 자라길 바라는 농민의 염원도 담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이니 뭐니 해서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우리 생명산업을 지키는 농민들을 격려하는 날조차 빼빼로에 치이자 2006년부터 ‘가래떡 데이’로 바꿔 부르고 있다. 가래떡은 하얀색이 순수한 농심을 닮았고, 제사상에 오르면 ‘용(龍)떡’이 된다. 농심도 용트림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11’자가 사람의 두 다리를 연상시키기에 세상을 향해 당당히 일어서서 세상을 활보하며 진정한 복지사회를 실현하자는 장애인들의 염원을 담은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하고, ‘보행자의 날’이기도 하다. 올해 보행자의 날 행사는 서울을 벗어나 중앙행정기관의 세종시 이전에 맞춰 대전 엑스포 시민광장에서 열렸다. 지난 주말 기념식도 하고 많은 시민들이 갑천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저탄소 녹색교통의 기초인 걷기의 중요성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던 것이다.
▷‘올바른 젓가락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젓가락 사용을 권장하는 ‘젓가락 데이’이기도 하다. 11일은 이처럼 여러 기념일이 겹쳐있다. 무엇을 선택해 기념할지는 각자 나름이겠지만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다면 농민과 지체장애인을 생각하는 날이었으면 싶다. 우리의 관심이 꼭 필요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기념일에조차 이들을 까맣게 잊고 산다면 격려하고 보듬는 즐거운 날이 아니라 그들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흐르는(11. 11) 걸 보는 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안순택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