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14일이 되면 오늘은 무슨 날이지 하고 따져보는 자신을 보면서 ‘데이 마케팅’의 위력을 실감한다. 언제부터인가 매달 14일, 즉 포틴데이(fourteenday)는 기념일이 됐다. 밸런타인데이(2월 14일)를 비롯해서 화이트데이(3월 14일), 블랙데이(4월14일), 로즈데이(5월 14일), 키스데이(6월 14일)…머니데이(12월 14일)까지 줄줄이다. 그럼 오늘은? 연인에게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다이어리데이다. 중·고교 생들에겐 헬로(hello)데이이고.

▷오늘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인사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해서 헬로데이다. 우리나라에 데이 마케팅이 확산된 건 1990년대부터다. 밸런타인데이를 시작으로 하나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지금은 50여개에 이른다. 연인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오죽하면 로이터 통신이 “한국에서 사랑은 막대한 비용과 함께 찾아온다”고 비꼬았을까. 14일뿐이 아니다. 2자가 3개 겹친 2월 22일은 커플데이요, 1자가 겹친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다.

▷우리 농수축산물 소비를 늘리기 위해 만든 날도 많다. 2월 23일 인삼데이, 3월 3일은 삼겹살데이, 5월 2일 오리데이 혹은 오이데이, 5월 5일 오겹데이, 5월 9일 아구데이, 6월 2일 유기농데이, 6월 6일 육육(肉肉)데이, 7월 5일 추어탕데이, 7월 중복(中伏) 복숭아데이, 8월 8일은 포도송이 닮은 8가 겹쳐 포도데이, 8월 18일은 쌀데이(八+十+八=米), 9월 9일은 구구(닭고기)데이, 10월 22일 배데이, 10월 24일 사과데이, 11월 1일 한우데이, 11월 4일 단감데이….

▷충북 제천시가 매달 8일을 국밥데이로 정하고 국밥을 먹는 상징적인 행사를 통해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국밥데이는 원래 9월 8일인데 다달이 행사로 확대한 것이다. 표현이 전통시장 가는 날보다 훨씬 살갑게 느껴진다. 밸런타인데이니 할로윈데이 등등 외국의 기념일이 들어오면 모두 본질은 사라진 채 상업행사로 바뀌는 걸 보면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가’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국밥데이처럼 간혹 개념 있는 날들이 있어 데이를 따져보게 된다.

안순택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