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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낙숫물로 보는 선율

“낙숫물을 듣다 보면 4/4박자 혹은 왈츠 풍으로도 그려지는데 또박또박 박자 젓기를 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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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7.15 18: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오늘도 예의 낙숫물 소리가 들린다. 장마철이다 보니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듣는다. 마당을 질러가면 낙숫물 떨어진 자리가 밭고랑처럼 이어져 있다. 한바탕 퍼붓다가 그치면 지붕에 남은 물이 떨어지고 그게 바로 낙숫물이다.

낙숫물은 빗물 외에도 한겨울 눈석임물과 고드름 녹은 것 등 여러 가지다. 듣다 보면 4/4박자 혹은 왈츠 풍으로도 그려지는데 또박또박 박자 젓기를 하는 것 같다. 그 다음 똑똑 쪼록 퐁 하는 뉘앙스로 바뀌면서 얌전히 내리던 빗줄기가 껑충 뛰기도 했다.

비가 그칠 때는 선율이 바뀌는데 간격이 뜸한 대신 물량은 늘어난다. 빠른 음폭이 불안정하다가도 때로는 명쾌해서 자못 흥겹다. 볕이 나면 기왓골의 물도 기세가 약해지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듯 모든 소리가 종결된다. 일정한 리듬에 가끔 변화를 주는 특이한 방법이었다.

낙숫물에 댓돌이 파인다고 했다. 어릴 적, 툇마루 밑에 신발 놓는 자리가 있고 눈비에 시달려 거무스름했다. 파인다고는 해도 수십 년은 걸릴 테니 과장된 표현이나 일시에 떨어져도 높이로 달라진다면 팬 자리가 일정한 것은 기왓골 높이가 같다는 의미다. 비가 그쳤다 하면 깔끔한 어머니는 곧장 쓸어내려 어김없이 지워져도 음표마냥 떨어질 때는 리드미컬한 느낌이었다.

물이 떨어질 때마다 패여 또렷이 구분되지만 기와를 보면 어지럽기만 했다. 보통의 기와가 아닌 늴리리야 지붕이라 당초무늬가 있고 처마가 높은 탓이다. 기왓골을 세다 보면 그 줄이 그 줄 같고 그 골이 그 골 같다가도 바닥의 홈 때문에 간단히 알 수 있었다.

충주댐은 온통 아우성 소리에 묻혔다. 계속된 장마에 노도와 같이 흐르는 탁류는 아찔한 느낌이나 폭포마냥 떨어진 물기둥이라야 전기가 된다. 올라갈 때만 높이가 있는 줄 알았더니, 올라갈 때는 추락을 동반하되 내려갈 때는 엄청난 힘을 말아 올린다는 것이다.

떨어지면서 놀라운 힘이 나오고 전기가 만들어지듯 위험을 무릅쓸 때 뭔가 이루어진다. 번뜩이는 무지개는 깨지고 부딪치는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깨우침 같다. 모난 그릇에는 모나게 원통에는 둥글게 모양대로 담길 때는 별다른 힘도 없을 법한데 모를 일이다. 혁신적인 변화로 자기 성장을 꾀한다면 인격적으로 승화된 후 낮추는 겸양과 겸손도 떨어지면서 전기를 얻는 과정 그대로다.

장마철이라 해도 바가지로 퍼붓듯 할 때는 내리는 족족 흘러가지만 어마어마한 댐의 군단에서 굉장한 힘으로 전이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더는 오를 여지가 없을 때 인격의 정수가 나오듯 추구하는 이념 역시어느 정도 차원에 오르면서 무한의 존재임을 깨우치는 게 댐에서 본 정경 그대로다. 짐짓 올라간 게 아닌 뜨거워진 물이 수증기에서 구름이 된 후 빗물로 떨어지면서 땅을 파고 댓돌까지 뚫는 것일까.

겨울에 고드름이 달릴 때는 얼음봉우리가 매달린 듯 환상적이다. 물받이에서는 흘러내려온 물이 작은 산처럼 솟아오르고, 처마 끝에서는 지붕에서 내려오는 물이 엉겨 봉우리를 거꾸로 세운 것 같다.

바람이 불면 약속이나 한 듯 흔들리는데 아코디언과 흡사했다. 다닥다닥한 기둥이 옥처럼 부서질 때는 실로폰을 쫙 그어대는 소리 같다. 뜻밖의 선율이 한겨울 신기루마냥 떠오르던 신비의 영상이다.

그 다음 낙숫물은 눈이 녹는 소리다. 낙숫물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로 알기 쉬우나 이른 봄 지붕의 얼음 조각이 박자나 맞추듯 떨어질 때는 꽤나 고풍적이다. 고드름 녹은 물이 음악적 여운을 준다면 해동할 즈음의 낙숫물은 1년을 준비하는 마중물이었다. 아울러 빗물이 떨어질 때의 지면은 축축해서 늘어질 수밖에 없으나, 겨울에는 눈 때문에 축축하기는 해도 습기가 덜어지는 차이 또한 특이했다.

가을에는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아 소리가 자연 뜸해진다. 이따금 내릴 때마저도 시기적으로 맞지 않으나 물받이 홈통에 가랑잎이 몰려 떨어질 때는 빗소리와 흡사하고 바람결에 낙숫물처럼 들리곤 한다.

다시금 낙숫물 소리다. 지붕의 물이 일제히 떨어지는 듯 와글와글하다. 얼마 후에는 남은 물방울이 죄다 모일 테니 떨어지는 간격도 넓어질 것이다. 아득히 오래 전 그 시간을 재면서 음악으로 생각했던 감상도 아름답거니와 무심코 떨어질 동안 댓돌이 뚫리는 데서 무엇이든 계속되면 필경 이룬다는 걸 깨우친다.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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