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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참여예산, ‘권위적 배분’에서 ‘합의적 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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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8.25 18:2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홍 만 표 日 메이지대 시민거버넌스연구소 연구추진원·지역정책학 박사

주민참여예산은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아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첫째는 제한된 예산을 어떤 형식을 통해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다. 실제 전체 예산에서 참여예산제에 할당된 몫은 그리 크지 않은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자칫 별다른 효용 없이 돈을 낭비하게 된다. 그래서 참여예산제도를 통해 우리가 개입할 영역이 무엇인지, 개입을 한다면 시민주도형으로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정부 시책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 합의를 해가야 할지 등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는 결국 예산 사용의 효율성 문제와 직결된다. 효율성은 참여예산제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 가장 필요한 미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연 효율을 어떤 기준으로 설정하느냐의 문제다.

전통적으로 국가는 ‘재화의 권위적 배분’를 시행해 왔다. 국가 이성에 따라 필요한 곳에 예산을 일방적으로 투입해 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역민의 실수요에 어긋나는 재원 투입이 있었고, 비효율도 발생하기 십상이었다.

반면 참여예산제도의 관점에서 효율적 배분은 ‘재원의 합의적 배분’ 원칙을 미덕으로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지역민들이 직접 참여해 수요자 입장을 반영해 정부의 비효율적 배분 형식을 개선하고, 동시에 비인간적인 시장의 폭력을 완화하자는 취지다. 따라서 참여예산제에 주어진 숙제는 배분의 형식과 합의적 배분의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영국의 참여예산제도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 살아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영국은 ‘지방 자치의 모국’이라고 하는데 매우 제한적인 측면이 있다. 지방정부에 위임 된 권한이 그리 크지 않고 특히 지방정부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재정적 폭이 상당히 적기 때문이다.

지방정부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주민세(COUNCIL TAX)밖에 없다. 그나마 주민세가 전체 세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도시가 20% 정도다. 국가 보조금이 있다 해도 이는 교육이나 치안 등 특정 목적 이외에 사용할 수 없는 고정된 예산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 시민이 결정할 수 있는 참여예산의 몫은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시민 참여예산을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 2004년 브래드포드 시의 경우 포르투알레그레 시의 성공 사례를 참고로 ‘참여 예산(Partici patory Budgeting)’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브래드포드 시의 경우 포괄적 의미의 참여예산이 아닌 특정 지역의 테마(지역 복지, 교육, 방범 등)마다 교부하는 보조금(예산)의 용도에 주민 참여를 시행하고 있다. 재원의 배분 형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좁힌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사례가 코번트리 시의 경우다. 코번트리 시는 빈곤 지역의 커뮤니티 재생을 위해 도시와 지역 커뮤니티가 51만 파운드(약 9억 원)를 준비하고,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투표한 우선순위 높은 사업에 자금을 투입한다. 코번트리시의 사례는 전국에서 명성이 높아졌고 이는 참여 예산제도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를 계기로 블레어 브라운 노동당 정권은 2006년에 정책 제언 (백서)으로 2012년까지 모든 지방정부에서 ‘참여 예산’을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참여예산제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고심했다. 시민이 지방정부의 예산 편성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자금을 갹출(Pod)한 지역 적립금 (Community Kitties)에 대해 각 지방정부에 할당 된 예산 용도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자치회 등에 참여하여 결정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것은 지역이 국가와 파트너십을 맺고 전략적 목표 달성을 목표로 하는 지역 협정(Local Area Agreement)의 시책과도 얽힌 노력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은 2010년 5월에 ‘참여예산’이 ‘커뮤니티 예산(Community Budgets)’으로 이름을 바뀌고 2011년에 제정한 지역주의법(Localism Act 2011)과 함께 내용도 변경?적용되도록 이어졌다. 커뮤니티 예산은 국가의 중기 예산 틀인 ‘세출 계획 2010(Spending Review 2010)’을 기본틀로 한다. 시민이 직접 예산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책임을 지고 시행하는 정책,즉 가정 내 폭력이나 약물 중독, 아동 학대, 저소득층 고용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출에 대해 지역의 NGO 등과 파트너를 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사업으로 추진하는 시험 프로젝트이다.

이 같은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참여 예산제도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을 던져 준다. 민주성과 경제성, 합의적 효율성 등의 균형점이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이 균형점은 정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참여예산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챙겨야 할 과제가 많다. 민주성과 효율성, 정부와 시민사회의 신뢰 등 어느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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