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우산 검정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동요 ‘우산’의 가사 내용으로 언제나 다정하고 정겨움을 자아낸다. 이 노래를 들으면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가 펼쳐지고 우산에 맺힌 갖가지 사연의 고통과 서러움이 담긴 회한의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필자의 유년시절 우산은 매우 값진 귀중품으로서 흔하지 않았다. 노래가사에 ‘찢어진 우산’이란 가사가 나오는데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생소하리라 생각되지만 그 시절엔 늘 있는 이야기로서 재질이 볼품없고 얇은 비닐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조그만 바람에도 쉽게 부러지고 찢어졌다.
그 시절엔 전쟁 폐허 후 베이비붐 시대로 대부분 가정이 형제자매가 많아 찢어진 우산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고 빈 비료포대에 구멍을 내어 뒤집어쓰고 다니곤 하였다. 우산이 없다 보니 우산 하나로 형제들끼리 같이 쓰거나 아니면 급우들과 함께 쓰고 학교를 오가곤 하였는데 현 시대의 생활패턴인 자가용으로 자녀들을 등하교시키는 모습과는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려웠던 시절 우산 하나로 형제들 간에 또는 친구들과 함께 쓰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던 때가 다정다감한 정도 더 많이 쌓이고 추억거리가 생겨남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옛 말에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비로소 철들고 살아생전 불효한 것만 생각난다고 하였듯이 필자 역시 십여 년 전 작고하신 어머니에게 지은 많고 많은 불효 중 가장 후회되는 것이 초등학교시절 비오는 날 등굣길에 없는 우산 달라고 생떼를 쓴 철부지 투정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날 아침부터 비가 계속 내리자 어머니께서는 비료포대 구멍 뚫은 걸 주면서 쓰고 가라고 하시기에, 철없는 아들은 창피해서 못 쓰고 간다고 우산 달라며 떼를 쓰니까, 어머니는 이웃집으로 빌리려 다녀보다가 끝내 구하지 못하고 못난 아들을 설득하셨지만 어리석은 불효자는 말을 듣지 않았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고 괴로운데 그 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한없이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우산에 관한 또 하나의 안쓰러운 사연은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일로서 그 날 아침엔 비가 안와서 아들은 우산을 안 가져갔고 하교시간에 갑자기 비가 오는데 아내는 더 먼 거리의 직장에 나가 있어서 갈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직장에 잠시 외출을 달고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학교에 가보니 대부분의 부모들이 와서 자기 자녀들을 자가용 또는 우산을 씌워가고 있는데 저만치 어느 한 꼬마가 책가방을 머리에 쓰고 가는 모습이 보여 자세히 살피며 쫓아가 보니 예상대로 걱정하였던 아들 녀석이었다.
아들 녀석을 보는 순간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한 가운데 이름을 부르니 뒤돌아보는 녀석의 모습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마는 누구나의 상상대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표정의 미소는 지금도 아들 녀석과의 어릴 적 감동의 상봉장면 중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 외에도 우산에 얽힌 서러움과 회한이 많아 생활용품 중에 우산에 대한 애착이 유독 심하여 지금도 간혹 잃어버리게 되면 찾으려 애를 쓰고 아쉬워함은 어릴 적부터 우산은 귀한 물건이란 인식이 잠재해 있고 어머니께 지은 죄의식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년시절 우산에 맺힌 애환이 많아 비오는 날 길을 가다가 우산 없이 비 맞고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곁에 다가가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우산을 함께 쓰곤 하는데 때로는 당황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감사의 인사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우산 때문에 어머니께 생떼를 쓴 투정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비 올 때면 더욱 생각나고 어머님께 지은 죄와 그리움이 사무침은 돌이킬 수 없는 불효자의 영원한 회한이다.